산업 기업

이건희의 '신경영' 이재용의 '뉴삼성' 뭐가 다른가

마누라·자식 빼고 다 바꾼 '신경영'

아래로부터의 혁신 노리는 '뉴삼성'



지난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서울의 비서실로 전화를 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목소리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삼성그룹의 사내방송인 SBC의 한 고발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세탁기 뚜껑이 불량인데도 라인 작업자가 태연하게 부품을 칼로 깎아서 대충 조립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 회장은 큰 충격을 받았고 그의 불호령에 삼성전자 핵심 임원들은 6월7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호텔로 집결했다. 이 회장은 “지금은 잘해보자고 할 때가 아니라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서 있는 때”라며 “마누라, 자식만 빼놓고 다 바꾸라!”고 말했다. 이후 이 회장은 17일간 임직원 200여명에게 신경영을 설파했다.

이 회장의 신경영 선언 이후 23년 동안 삼성전자는 완전히 다른 회사가 됐다. 전 세계 1등 제품은 D램 등 단 2개에서 20개로 확대됐다. 임직원 수도 14만명에서 국내외 50만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한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6.3%였던 1993년과 달리 저성장이 고착화된 ‘뉴노멀’ 시대에서 삼성전자는 생존을 위한 변화를 고민하고 있다. 노키아와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전망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2013년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매출이 2013년 228조원에서 지난해 200조원으로 감소했다. 영업이익 역시 2013년 37조원에서 지난해 26조원으로 줄었다.


삼성전자가 ‘스타트업 삼성’이라는 기업문화 혁신을 선언한 것 역시 이런 맥락이다. 고질적인 상명하복식 문화를 혁파하고 불필요한 회의의 반복 등을 없애 보다 빠르고, 보다 창의적인 삼성을 만들어 구글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뿐 아니라 하루에도 수십 개씩 나타나는 IT 스타트업과 경쟁하겠다는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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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과 이재용 부회장의 스타트업 삼성의 가장 큰 차이는 변화의 방향이다.

이 회장의 신경영은 이 회장에서부터 아래로 진행됐다. 주요 임원들부터 솔선수범해 조직을 개선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경우 직원들의 요구와 열망을 받아들여 이를 아래에서 위로 변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과거 굴뚝산업 시대에 기업들이 추구하던 한 조직은 주어진 하나의 일만 하는 농경형에서 필요할 때 모여 일하고 끝나면 헤어지는 유목민형(노마드형) 팀으로 개선한다. 직위·직급을 혁파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신생 벤처기업처럼 자율성과 창의적 사고, 수평적 조직문화를 갖추겠다는 뜻이다. 수직적인 문화 대신 혁신과 새로운 사고를 가로막는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다만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이번 문화 혁신에 대해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이제 거대한 조직으로 성장동력이었던 관리의 삼성이 스타트업 조직처럼 개선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도원·김현진기자 theone@sed.co.kr

강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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