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수출기업 한중FTA 혼선…'HS코드' 통일 등 세부지원 나서야

관세 혜택 못받은 현대차 1·2월 누적 판매량 급감

정부, 관세 전문가 현지 파견 등 애로 점검 급선무

한중FTA·아태무역협정 관세율 비교·정리도 필요



우리 기업들을 대상으로 경영 환경 설문을 하면 거의 모든 조사에서 ‘중국 경기 둔화’를 가장 힘든 요인으로 꼽는다. 역으로 말하면 기업들이 장사를 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부 차원의 지원 체계에서 가장 소중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 100일이 되도록 제대로 된 관세 인하 효과 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심각한 부분이다. 한·중 FTA가 일선 기업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정밀한 진단과 대책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주력기업 중국 판매 비상…FTA효과만 제대로 봤어도= 현대·기아자동차는 올해 중국 시장에서 ‘쇼크’ 수준의 실적을 기록했다.


현대차의 1·2월 누적 판매량은 12만8,462대에 그쳐 전년(17만7,321대) 대비 27% 넘게 급감했다. 기아차 역시 같은 기간 9%에 이르는 판매량 하락세를 맛봤다.

일시적 현상이라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지난해 현대·기아차의 전체 판매량은 167만8,922대로 전년 대비 4.9% 감소해 성장세에 제동이 걸렸다. 양사 합산 시장점유율은 지난 2012년 10.5%로 최고점을 찍은 뒤 매년 하락해 올해 2월 누적 기준 6.7%까지 낮아졌다.

현대차가 각별히 공을 들여온 중국 시장에서 뚜렷한 하락세가 감지되면서 현대차는 다양한 대책을 동원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중국 주요 딜러사 경영진 등 1,100여명을 국내로 직접 초청해 중국 딜러 대회를 개최했다. 지금까지 미국·영국 등지에서 개최되던 중국 딜러 대회가 국내에서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현대·기아차를 중국 최고 브랜드로 키우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중 FTA를 활용한 공세도 ‘히든카드’로 준비했다. 현대·기아차는 전체 자동차 부품 중 90%는 현지에서 조달하지만 엔진 등 나머지 10% 부품은 한국의 협력사들로부터 수입해 완성차를 조립하고 있다. 이 수입 부품에서 관세 인하에 따라 가격 하락 요인이 발생하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게 현대·기아차 경영진의 판단이었다. 부품별로 관세가 제각각이어서 평균을 내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3%포인트 안팎의 관세 인하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정부는 한국에서 생산한 완성차를 ‘초민감품목’으로 분류해 관세를 유지했지만 자동차 부품 관세는 유예기간을 두고 인하하기로 해 한국 부품사 및 중국 현지 현대·기아차의 수혜가 예상됐다. 이에 앞서 현대·기아차는 중국 판매량이 급감하자 지난해 8월 일부 차량에 한해 800만원에 이르는 할인 행사에 돌입하는 등 대대적인 공세에 나선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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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중 FTA가 발효된 지 100일이 지난 현재 실제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정부가 백화점식으로 관세 인하 품목을 나열해 발표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관세 인하를 받기까지 까다로운 난관이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된 탓이다. 현대·기아차의 중국 현지 생산법인 3곳에서 HS코드를 전수 조사한 결과 국산 부품의 34%가 관세 인하 혜택을 받기 어려운 것으로 드러난 실태 조사 결과가 대표적인 사례다.

현대차는 지난 24일 부품 협력사 실무자 200여명을 서울 양재동 본사로 소집해 집중 교육을 펼쳤지만 2차 협력사의 경우 사실상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지 않은데다 인력도 태부족해 현대차가 요구하는 수준에 원산지 증명을 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중 FTA 적용 체계 원점에서 재점검 필요=재계의 한 관계자는 “FTA 같은 무역협정은 체결 그 자체보다 발효 이후 현장에서 애로 사항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게 더 중요한데 FTA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꼼꼼한 디테일이 아쉽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수출 기업들의 혼란이 커지고 있는데도 정부가 체계적인 지원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부품에 따라 한·중 FTA와 아시아·태평양무역협정(APTA)에 적용되는 관세율이 서로 달라 고충을 겪는 기업이 많은데도 관련 당국이 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본세율이 6.5%인 방음패드의 올해 한·중 FTA 관세율은 5.6%인 반면 APTA 관세율은 4.6%로 APTA를 적용받는 게 더 유리하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런 정보를 몰라 관세 1%포인트를 손해 보는 곳이 적지 않다. 반대로 비금속제경철(기본세율 10%)은 FTA 관세율이 6%에 불과한 반면 APTA에서는 양허 제외품목으로 분류돼 관세를 그대로 다 물어야 한다.

현대차 부품사의 한 관계자는 “현장의 중소기업이 한·중 FTA에 적응할 때까지만이라도 유관 기관에서 관세 전문가를 현장에 파견하는 식으로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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