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일어난 파리 테러와 이달 22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발생한 연쇄 폭탄테러로 테러 공포가 전세계를 휩쓸고 있다. 이와 맞물려 각종 테러로부터 귀중한 인명을 지킬 수 있는 장비에 대한 수요도 급증하는 상태다. 특히 강철보다 강하고 총알도 뚫지 못하는 아라미드 섬유가 방탄용으로 각광받으면서 이를 생산하고 있는 코오롱·효성 등 국내 업체들이 증산을 고려할 정도로 수요가 밀려들고 있다.
27일 화학·섬유업계에 따르면 최근 방탄복·방탄모, 장갑차와 같은 각종 군용 장비 적용을 위해 아라미드 공급을 문의하는 사례가 늘면서 국내 아라미드 생산업체들이 중기적으로 증산 계획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효성은 연간 1,000~1,500톤 수준인 아라미드 생산량을 2~3년 내에 5,000톤 규모로 늘린다는 목표다. 코오롱은 5,000톤 규모의 생산라인 가동률을 약 95%까지 끌어올렸다. 해외 아라미드 전시회에 참가했던 한 섬유업체 관계자는 “파리 테러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코오롱·효성에 안전용 아라미드 공급을 타진하는 사례가 부쩍 늘어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현재 서구권은 이슬람국가(IS)와 연계한 극단주의자들의 잇딴 테러로 홍역을 앓고 있다. 소수 민족들이 독립을 꾸준히 요구하고 있는 중국도 테러가 빈발하고 있다. 여기에 개별적으로 활동하는 자생적 테러리스트까지 등장하면서 각국은 테러의 사전 예방만큼이나 대테러 안전장비 확보에도 주력하는 상태다.
이런 가운데 일명 ‘슈퍼섬유’로도 불리는 아라미드는 대테러 방어장비용 소재로 점차 선호도가 올라가고 있다. 아라미드 섬유는 5㎜ 정도 굵기의 가느다란 실이지만 2톤짜리 자동차를 들어올릴 정도로 높은 강도를 자랑한다. 또 불에 타거나 녹지 않으며 500도가 넘어야 검게 탄화한다. 늘어났다가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는 탄성도 뛰어나 아라미드 섬유에 총알이 들어오면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뚫고 나가지 못한다.
시장조사기관 TMR리서치는 지난해 28억달러(약 3조2,770억원)였던 전세계 아라미드 시장규모가 오는 2023년께 50억달러(약 5조9,66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연평균 7.8%의 고성장세를 구가할 것이란 얘기다.
업계는 전체 아라미드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로 방탄복 같은 보호·안전 장비용 소재로 본다. 아라미드는 이밖에도 첨단 자동차·항공기의 내부 골재로도 활용되며 스포츠 장비에도 적용이 점차 늘고 있다.
때마침 아라미드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미국 듀폰과 코오롱 간의 소송전이 마무리됨에 따라 국내 업체들의 해외 시장 진출을 가로막는 장애물도 사라졌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자사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듀폰이 제기한 소송전에 대해 벌금과 합의금을 합쳐 3억6,000만달러를 물고 분쟁을 마무리하기로 지난해 합의했다. 코오롱은 고(故) 윤한식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박사와 함께 1980년대 아라미드 섬유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네덜란드에 이은 세계 3번째였다. 현재 코오롱은 ‘헤라크론’이라는 독자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으며 후발주자로 뛰어든 효성은 ‘알켁스’ 브랜드를 내세우고 있다.
다만 국내 업계는 듀폰과 일본 데이진이 주도하고 있는 아라미드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듀폰과 데이진은 90%에 육박하는 압도적 점유율로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화섬업계의 한 관계자는 “방탄복과 방탄모에 전부 아라미드를 적용한 미군과는 달리 한국군에는 아라미드 도입률이 높지 않다”며 “코오롱과 효성을 비롯한 국내 업계는 군용 납품을 차근차근 늘리며 해외 거래선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