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치킨집은 공급과잉 아니다? 원샷법 시행 앞두고 업종 구분 딜레마

업종 구분 방식 5가지 달해

'소분류'땐 과잉공급 아니지만

'세분류' 적용땐 과잉 포함돼

테레프탈산 업종도 명암 갈려

구조조정 작업 초반부터 난관



현재 국내 치킨 전문점 수는 3만6,000여개. 전국 방방곡곡 동네마다 치킨집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다. 세계 최고 수준의 밀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 치킨 소매점은 과잉공급업종일까.

상식적으로 보면 과잉공급업종이 맞다. 하지만 현실은 업종 분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한국표준산업분류에 따르면 업종을 구분하는 방법에는 5가지(대·중·소·세·세세 분류)가 있다. 치킨 소매점에 소분류(228개로 업종 구분) 잣대를 대면 치킨집은 과잉공급업종에 포함되지 않지만 세분류(487개 업종)를 따르면 그 반대다. 업종 구분 자체가 성긴 소분류 적용 시 치킨집이 다른 소매점과 섞이면서 ‘과잉공급업종’ 꼬리표를 피하게 되는 것이다.


오는 8월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일명 원샷법)’ 시행을 앞두고 법 적용 대상인 과잉공급업종 기준 마련에 나선 정부도 이런 문제로 고민이 깊다. 업종을 200여개로 추리자니 치킨 소매점처럼 ‘숨어 있는’ 과잉공급업종이 생기고 500여개로 세세히 나누자니 과잉공급업종을 증빙할 각종 지표가 모자라는 딜레마에 빠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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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한 원샷법은 ‘보텀업(bottom-up)’ 방식을 따른다. 기업이 원샷법 적용을 받으려면 정부 심사에 앞서 먼저 자사가 과잉공급업종에 속한다는 점을 증빙자료로 입증해야 한다. 그러려면 원샷법 시행령 및 지침에서 과잉공급업종 기준으로 활용될 것으로 보이는 △매출액 △영업이익률 △가동률 △부채비율 등 주요 통계지표가 필요하다. 그런데 구분을 위해 업종을 잘게 나눌 경우 공신력 있는 지표가 부족한 업종이 적지 않은 것으로 조사되면서 문제가 꼬이고 있다. 정부로서는 원샷법 시행을 위한 제반 작업의 첫 단추부터 난관에 부딪친 셈이다. 실제 조선·철강 등과 함께 석유화학 분야에서 구조조정 대상으로 집중 거론되는 테레프탈산(TPA)도 소분류냐, 세분류냐에 따라 과잉공급업종 여부가 달라지는 문제가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업종 가짓수를 줄이니 개별 기업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는 부작용이, 세분하니 과잉공급업종을 뒷받침할 지표가 적어 기업의 증빙 자체가 어려워지는 단점이 발생하고 있다”며 “당초 3월 말까지 (과잉공급업종 기준과 관련한) 초안을 마련하려 했는데 이 문제 때문에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일반적으로 시장에서 과잉공급으로 여겨지는 업종들은 모두 걸러낼 수 있는 기준을 만든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가 벤치마킹하고 있는 일본의 ‘산업경쟁력강화법’도 문제 해결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산업경쟁력강화법에서는 재화의 기능 또는 효용이 대체관계에 있고 업태의 특성이 비슷하면 통상 같은 업종으로 묶는다. 그러다 보니 업종 구분이 세세하지 않다. 최근 3년간 매출액영업이익률이 20년 평균보다 15% 이상 하락하고 상품 가격 등락폭이 원재료 비용의 등락폭을 웃도는 경우 해당 업종을 과잉공급으로 보지만 업종 구분 자체는 단순하다. 일본의 경우 법 적용 대상이 우리와 달리 전(全) 업종이고 법 적용 심사 과정에서 정부 재량권도 커 업종 구분 방식 자체가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구조다. 한 민간 연구소 관계자는 “일본의 제도가 법 적용의 불확실성은 높은 반면 사전 상담으로 운용의 묘를 발휘할 수 있는 형태라면 우리는 재벌 특혜라는 비판 여론 등으로 기업들이 법에 의거, 과잉공급업종임을 증빙해야 돼 차이가 있다”며 “법 시행까지 4개월 남짓 남은 만큼 합리적 수준에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이상훈기자 shlee@sedaily.com

이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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