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끊이지 않는 공정성 잡음...'군사법원 폐지' 또 고개

장교가 재판관인 심판관제도

계급논리·온정주의 논란 일어

더민주 총선 공약으로 '폐지' 제시

"軍 특수성 감안 유지해야" 의견도



# 지난해 6월 선임의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한 해병대 일병이 건물 3층에서 뛰어내렸다. 해당 부대 지휘관은 가해 병사의 폭행 사실을 알고도 입건하지 않아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됐다. 지난 2월 사건을 맡은 해병대 사령부 보통군사법원은 지휘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부대 이미지 실추를 우려했고 해당 병사가 사망할 개연성이 낮아 사건을 가볍게 판단한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 2014년 9월 손과 발이 묶인 채 포로체험 훈련을 받던 특전사 2명이 질식사하자 6명의 군인이 군사재판에 넘겨졌다. 현장 교관이던 부사관 4명은 각각 2,000만 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장교급 관련자는 처벌받지 않았다. 감독 책임을 지던 영관급 장교 2명은 1심에서 벌금형을 받았다가 올 초 2심에서 모두 무죄가 됐다. 애초 훈련을 제안했던 사령관은 처음부터 재판에 넘겨지지 않았다.


공정성과 온정주의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군사법원의 개혁 문제가 총선 이후 다시 정치권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이 20대 총선 사법분야 핵심공약으로 군사법원 폐지를 포함한 군 사법 체계 개편안을 들고 나섰기 때문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은 전통적으로 야당 몫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더민주당의 공약은 20대 국회에서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11일 정치권과 법조계에 따르면 더민주당은 군사법원 심판관 제도 폐지, 관할관 확인조치권 폐지 등을 20대 총선 사법분야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박일환 더민주당 법제사법전문위원은 “지난해 12월 관할권과 심판관 제도를 제한하는 군사법원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여전히 미흡하다”며 “관할관과 심판관 제도를 없애고 당론을 모아 군사법원 폐지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과 국민의 당은 별도의 사법분야 공약을 제시하지 않았다.

심판관 제도는 법조인 출신인 군판사가 아닌 일반 장교가 재판관이 돼 심리에 참여하는 제도. 피의자의 범죄행위를 판단할 때 군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논리에 따라 군사법원에서 운영하고 있다. 다만 심판관은 법률보다 군 문화에 더 익숙한 터라 군사법원이 계급논리와 온정주의 판결을 내리게 된다는 지적을 받았다.


심판관이 재판부 뜻과 달리 독단으로 선고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2011년 재판의 피의자는 사격 훈련을 통제하던 장교 A씨였다. A씨는 귀에 솜을 낀 채 사격훈련에 나선 이병을 교육시킨다는 명목으로 바로 옆에서 수십 발의 공포탄을 쏴 이병의 고막을 다치게 한 혐의를 받았다. 3명의 재판관 가운데 홀로 A씨의 무죄를 주장하던 심판관은 유죄 합의에도 불구하고 선고 현장에서 무죄를 선고하고 자리를 떴다. 이 심판관은 당시 재판관 가운데 계급이 가장 높았다. 군법무관 출신인 신종범 법무법인 누림 대표변호사는 “법률적인 절차보다 상관의 의견을 우선시하는 군 문화에 따라 자신이 재판장이라는 생각에 이런 행동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민간 법원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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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군사법원법 개정안은 심판관 제도를 원칙적으로 없애기로 했지만 지휘관이 원한다면 여전히 운영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특히 군사기밀 사건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해 장성급 고위직 범죄에 취약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방부 검찰단 고등검찰부장을 지낸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는 “민간 업체들과 결탁해 잠수함과 레이더 등 특수 분야의 군사기밀을 유출한 사건이 있을 때 심판관을 부른다는 논리인데 전문성을 이유로 해당 분야 장교를 심판관 자리에 앉히면 전·현직 상사나 동료를 재판하게 되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공정한 재판을 기대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심판관을 임명하는 이는 군사법원이 설치된 부대의 지휘관(관할관)이다. 지휘관은 심판관 임명뿐 아니라 재판 결과를 모두 보고받고 개인 재량으로 형량을 줄일 수 있는 권리(확인조치권)도 갖는다. 지난해 말 법 개정으로 확인조치권의 범위가 선고형의 3분의 1 이내로 줄었지만 완전히 폐지된 것은 아니어서, 지휘관의 판단이 판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여전하다.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법 개정 이후에도 군사법원 폐지 목소리가 꾸준하다. 이계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재판부 구성이 민주적인지, 절차가 공정하고 투명한지, 결과를 검증하고 비판할 수 있는지 등을 볼 때 매우 예외적이고 이례적인 제도”라고 비판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의뢰로 한국공법학회가 지난해 국군교도소 수용자 9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6.7%(73명)가 군사재판이 불공정하다고 답했다. 2003년 같은 조사에서 불공정하다는 응답은 55.3%였다.

반면 군사법원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군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민간에서 운영 중인 법 제도와는 차별성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다. 오경식 강릉원주대 법학과 교수는 “군은 국가존립을 위한 필수 불가결의 요소며 전투 승리를 최고의 목적으로 하고 있으므로, 일반사법제도와는 다른 제도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흥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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