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 모 대학의 취업지원센터 관계자 A씨는 요즘 실의에 빠져 있다. 졸업생 취업률이 바닥인데다 지난해까지 매년 개최해왔던 대기업 채용설명회마저 올해는 열기 힘든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A씨는 “수십 군데의 대기업 인사팀에 행사를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며 “심지어 한 대기업으로부터는 ‘저희가 그 학교를 왜 가야 하는데요’라는 핀잔만 들었다”고 하소연했다.
11일 대학가에 따르면 그동안 대학 내에서 진행되던 대규모 채용박람회가 잇따라 폐지 또는 대폭 축소되면서 대학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미 이화여대와 한국외국어대의 경우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규모 채용박람회를 열지 않고 있다. 올해 역시 아직 특별한 계획이 없다. 극소수의 일부 대학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과거와 같은 대규모 채용박람회를 상·하반기에 개최하는 곳은 거의 없다는 게 대학가 취업담당자들의 분석이다.
취업난이 심화하면서 취업 시장에서 확실한 ‘갑’의 위치에 올라선 기업들이 더 이상 대학을 직접 방문해 인재를 구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학들은 개별 기업에 직접 연락해 채용설명회 유치에 나서고 있지만 주요 대기업들은 이를 꺼려 해 담당자들의 속만 타들어가고 있다.
취업설명회 유치를 둘러싼 대학 간 쟁탈전도 거세지고 있다. 실제로 국내 한 유력 백화점 업체인 B사는 지난해까지 채용설명회를 K대에서 진행했다가 올해부터는 취소했다. 주위 대학들이 “왜 K대만 가느냐”며 거세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일부 대학들은 리크루팅 대행업체에 5,000만원가량 줘가며 중소형 규모의 채용박람회를 개최하지만 요식행위에 그치는 경우도 상당수다. C대학에 다니는 오모씨는 “학교에서 웬일로 주요 대기업들을 초청했다고 해서 가봤더니 말이 대기업이지 그룹 본사가 아니라 평소에 들어본 적도 없는 계열사 한두 군데가 와서 생색만 내는 수준이었다”며 “이마저도 인사팀 직원들이 바쁘다는 핑계로 잠깐 머무른 탓에 상담을 못하고 그냥 돌아간 학생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대기업들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한 대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가뜩이나 채용인원이 줄어가는 추세 속에 서울시내와 전국의 주요 대학만 가도 스무 군데가 넘는다”며 “대학들의 요구를 일일이 받아주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대학 취업지원센터들은 대기업들의 싸늘한 반응과 부족한 가용인력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따르면 국내 4년제 대학의 취업지원센터 전담인력은 평균 5.8명이고 정규직은 2.7명에 불과하다. 한 대학의 취업지원센터 관계자는 “부족한 인력과 시간을 쪼개 준대기업급의 기업을 직접 찾아다니며 채용설명회를 열어달라고 이른바 ‘영업’에 나서고 있다”며 “하지만 지금처럼 예산과 직원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 새로운 기업을 발굴하는 것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진용기자 yonngs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