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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REVIEW] 세상의 모든 공식

'수학책=이야기책' 등식의 증명

존 M. 헨쇼 저 / 이재경 옮김 / 반니 / 304쪽 / 1만6,000원존 M. 헨쇼 저 / 이재경 옮김 / 반니 / 304쪽 / 1만6,000원


키가 4~5m까지 자라는 기린은 가장 튼튼한 심장을 가진 동물의 하나다. 심장의 중량은 체중의 0.5%에 불과하지만 두께가 8㎝에 육박한다. 마치 몸속에 천연 G-슈트(제트전투기 조종사들이 급격한 압력 변화에 견딜 수 있도록 않도록 제작된 특수 복장)를 지닌 것과 같다.

이런 기린의 심장에는 공식이 하나 숨어 있다. 베르누이 방정식, 그중에서도 비압축성 유동 방정식이다. 수학자이자 이론물리학자인 다이넬 베르누이가 고안한 것으로 유체의 속도와 거리, 압력 등의 상관관계를 계산하는 방정식이다.


심장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일이다. 피가 통하지 않아 뇌에 공급되는 산소량이 모자라면 의식을 잃게 된다. 기린이 물을 마시기 위해 머리를 5m나 숙였다가 고개를 들어 올릴 때의 압력 변화는 상상을 초월한다. 베르누이가 기린의 심장을 직접 봤는지는 알 수 없지만 특별하다는 것만큼은 충분히 미루어 짐작했을 것이다.

저자 존 M. 헨쇼는 미국 털사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로 일반인을 위한 교양과학서를 집필하고 있다.저자 존 M. 헨쇼는 미국 털사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로 일반인을 위한 교양과학서를 집필하고 있다.


수학책이 아닌 이야기책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과는 뭐니 뭐니 해도 만유인력의 법칙을 탄생시킨 아이작 뉴턴의 사과다. 물론 그가 우주의 기본적인 운동원리를 떨어지는 사과 하나로 통찰했을 리는 없다. 갈릴레이, 케플러, 데카르트 등 선배 석학들의 연구 성과가 밑거름이 됐다. 그래서 뉴턴은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

“내가 남보다 멀리 볼 수 있었다면 그것은 거인들의 어깨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 사과의 질량은 터무니없이 작아 지구의 질량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지구와 달, 혹은 지구와 태양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사과를 땅으로 떨어지게 하는 힘의 원리를 알면 행성들의 궤도운동까지 설명할 수 있다. 질량을 가진 물체 사이에는 끌어당기는 힘(인력)이 존재하며, 두 질량체 사이에 작용하는 인력은 두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두 물체 사이의 거리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것이 만유인력의 법칙이다.

이후 후배 수학자(과학자)들은 천황성에 가해진 미지의 인력을 실마리로 해왕성을 발견한다. 또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중력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블랙홀과 중성자별을 통해 일반상대성이론을 완성했다. 뉴턴 본인이 수 많은 후배 과학자를 양쪽 어깨로 떠받치는 거인이 된 셈이다.

수학은 세상을 해석하는 학문이지만 그 외에도 또 하나의 기능이 있다. 바로 스토리텔링이다. 저자는 세‘ 상의 모든 공식’이 수학책이 아니라고 말한다. 훌륭한 방정식은 훌륭한 이야기와 같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수‘ 학책=이야기책’, 혹은 ‘훌륭한 방정식=훌륭한 이야기’라는 등식이 성립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수학책이 아니다. 이야기책이다. 다만 수학공식에서 영감을 받은 이야기를 모아놓았을 뿐이다. 모든 방정식의 배후에는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하나의 방정식이 여러 이야기를 이어주기도 하고, 여러 방정식이 하나의 이야기로 귀결되기도 하고, 여러 이야기에 여러 방정식이 짜여 있기도 하다.”

책에는 앞서 언급한 만유인력의 법칙과 비압축성 유동 방정식을 포함해 오일러 방정식, 피타고라스 정리,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도플러 효과 등 52개의 공식과 이와 연관된 52가지 스토리가 담겨 있다. 각 장마다 공식이 등장하지만 사실 공식 자체는 그냥 지나쳐도 괜찮다.

순서대로 읽지 않고 건너뛰어도 좋다. 아니 그러라고 저자는 권한다. 재미있거나 관심이 가는 부분부터 읽으라고 말이다.

“독자들에게 이 책을 설렁설렁 읽기를 권한다. 물론 책에 실린 방정식 중 상당수는 ‘장황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 하지만 방정식을 장황하게 캐는 것은 이 책의 목적이 아니다.”

오일러 항등식을 만든 스위스의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오일러 항등식을 만든 스위스의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


가장 아름다운 방정식 ‘오일러 항등식’

저자의 권유대로 용기를 발휘해 가장 먼저 읽은 대목이 오일러 항등식이다. 이 녀석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정식으로 불린다. 왜냐고? 다른 방정식들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모든 방정식은 풀이와 해가 있다. X+2=4라는 방정식을 풀면 X=2라는 답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오일러 항등식에는 풀이가 없다. 대신 산술과 대수학, 기하학, 해석학 등 고전 수학의 모든 요소가 포함돼 있다. 가장 신비한 상수로 꼽히는 e(자연로그의 밑)와 원주율(π), 덧셈의 항등원(0)과 곱셈의 단위원(1)도 들어있다. ‘-1의 제곱근’으로 정의되는 신비의 허수(ⅰ)까지 등장한다.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공식으로 융합돼 유한 속에 무한이 숨어 있고, 무한이 유한을 만든다는 놀라운 진리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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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보면 오일러 방정식보다 더 놀랍고 아름다운 것은 수학자 오일러의 삶이다. 오일러가 없었다면 수학에서 공부해야할 내용이 절반으로 줄었을 것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그가 수학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젊은 시절부터 시력장애로 고생했던 오일러는 눈을 감기 전 17년 동안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으로 살았다. 하지만 실명한 후 오히려 더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머릿속으로 계산한 수학공식을 동료가 받아쓰게 했는데, 오일러의 속도를 따라가려면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에게 삶과 계산은 하나였다. 그래서 세상을 떴을 때 누군가 이런 추도사를 남기기도 했다.

“오일러가 계산을 멈췄다. 삶을 멈췄다.” 에너지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열역학 제1법칙이다. 에너지는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바뀔 뿐 새로 생성되지도 소멸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라고도 한다. 이를 무시하는 에너지 생성 기계를 ‘영구 기관’ 혹은 ‘무한동력장치’라 칭한다. 1의 에너지를 투입하면 2의 에너지가 생성돼 1은 재투입하고, 나머지 1은 사용하는 식으로 처음 한번만 에너지를 투입하면 추가적인 에

너지 투입 없이도 영원히 에너지가 생산되는 꿈의 장치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람이 영구기관의 개발을 시도했다. 물론 성공한 사례는 없다. 때문에 프랑스 과학아카데미는 1775년부터 영구기관과 관련된 제안은 아예 신청조차 받지 않는다. 미국 특허청도 예외조항을 두고 영구기관의 출원에 대해선 심사나 판단을 거부한다.

그동안 속을 만큼 속았다는 의사 표현이다. 그럼에도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다. 2006년에도 한 회사가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청정에너지를 무한 생성하는 장치를 발명했다는 광고를 싣기도 했다. 반신반의하며 과학자들이 검증에 나섰고, 예상대로 거짓임이 드러났다.

챌린저호를 추락시킨 고무 오링의 비밀

1986년 미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 73초 만에 공중 폭발했다. 그 사고로 7명의 승무원 전원이 사망했다. 인류의 우주개발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불리는 이 사고에도 공식이 숨어 있다.

특별조사위원회에 참여했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리처드 파인만은 작은 고무 오링(O-ring) 하나를 들고 TV 카메라 앞에 섰다. 그의 시현은 미국인에게 차갑고도 섬뜩한 메시지를 던졌다. 챌린저호는 얼어붙은 오링 때문에 폭발했다는 것이었다.

고무 오링에 담긴 공식은 ‘점탄성 재료의 손실계수’. 탄성중합체의 거동이 가장 가죽 같아지는 온도, 즉 유리 전이 온도를 구하는 공식의 하나다. 이를 통해 고무처럼 점성과 탄성이 공존하는 점탄성 재료가 특정 온도에서 점성 상태에 가까운지, 아니면 탄성 상태에 가까운지를 알 수 있다.

공식보다 더 중요한 사실도 있다. 챌린저호의 비극을 우주선 고체연료 로켓 부스터의 가스누출을 막는 데 쓰였던 고무 오링의 탓만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는 점이다. 챌린저호 폭발사고 같은 대참사의 이면에는 일련의 사건이나 상황이 동시에 겹쳐지며 비극을 초래하는 이른바 실‘ 패의 사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책에는 이런 수학이나 물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공식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자외선차단지수(SPF)를 어떻게 계산하는지, 이제는 그 효용성을 심각하게 의심받고 있는 지능지수(IQ)가 왜 등장했는지, 비만의 기준이 되는 체질량지수(BMI)가 얼마나 비과학적인지 등 실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공식의 이야기도 한 보따리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기념비적 저서 ‘시간의 역사’에서 지인에게 들은 경고를 하나 소개했다. 책에 방정식이 하나씩 추가될 때마다 판매량은 반 토막이 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책 속에 단 하나의 방정식, 아인슈타인의 에너지 질량 등가 법칙(E=mc2)만 담았다.

호킹 박사와 달리 이 책의 저자인 헨쇼는 52가지 이야기마다 공식을 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방정식 숫자와 판매량의 반비례 법칙’은 통하지 않을 듯하다. 52개의 공식이 나오는데도 지루하지 않으니 말이다.

유리 전이 온도 - glass transition temperature.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편집팀/과학칼럼니스트 김형석 blade31@daum.net

안재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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