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노동운동 딜레마, 문화활동이 해법

이옥경 미래창조과학부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이옥경 미래창조과학부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지난 11일 대법원이 산업별 노동조합의 지부 지회가 스스로 조직 형태를 변경해 기업노조로 전환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조합원들의 자율적인 노조선택권이 더 커지게 됐지만 한국 노동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양대 노총에는 비상이 걸렸다. 노동계에서는 이번 판결로 노노갈등과 노조와해를 위한 사용자 개입 등이 우려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이런 추세에 대해 반성하는 태도로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번 판결로 상급조직에서 비합리적 의사결정이나 지나친 강경투쟁만을 앞세울 경우 조합원들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노조 형태를 변경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정당한 측면이 있다. 지금까지 기업별노조에서 산별노조로의 조직전환은 쉬웠지만 거꾸로 산별노조에서 기업별노조로 바꾸기는 힘들었다. 우리도 노동운동을 하지만 우리에게 불리한 것은 모두 부당하다고 말해야만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그런데 노조 입장에서 왜 강경투쟁만을 앞세워왔을까. 거기에도 불가피한 이유가 있다. 노동운동 동력을 유지할 필요가 있어서다. 사용자들의 부당한 구조조정이나 노동탄압이 있을 때 노동자들은 단결하고 투쟁해야만 한다. 사용자의 부당 노동 행위는 소수의 사용자가 마음먹기에 따라 쉽게 결정되지만 그에 대응한 대규모 단결 투쟁 동력은 하루아침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필요한 투쟁 동력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쉬운 해법이 아마도 지속적으로 투쟁 목표를 설정하고 강경 투쟁을 지속해나가는 것일 게다. 투쟁으로 투쟁 동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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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번 대법원 판결 사례에서도 보듯이 결과가 그렇게 좋지 않다는 점이다. 강경 투쟁 일변도의 노동운동으로 노동자 스스로 염증을 느끼는 상황이 됐다. 딜레마다. 강경 투쟁을 그만두자니 투쟁 동력을 상실하기 쉽고 반대로 강경 투쟁을 지속하자니 노동자들이 피로감을 느낀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문화의 시대인 오늘날 문화에서 하나의 답을 찾을 수 있다. 강경 투쟁이 아닌 문화를 통해 노동운동의 동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함께 모여 의사소통을 하고 현안 문제를 공유하며 부당한 노조탄압이 발생할 때 투쟁하기 위한 역량을 키워야만 한다. 영화를 보고 인문학을 공부하고 음악과 미술을 감상하며 과학적 교양을 높이고 사회과학적 지식을 쌓으면서 이러한 활동을 할 수 있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다. 문화 활동이란 사람들의 다양한 기호를 반영해야 한다. 자연스레 노조원들의 일사불란한 활동보다 여러 소모임이 발전할 것이다. 조직력보다 다양한 의견충돌이 생겨날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노조 지도부가 더욱 정교하고 섬세하게 노조 활동을 기획하고 끊임없이 조합원들의 요구와 기호를 반영해야 한다. 더 멀리 내다보며 정책과 투쟁 방향을 합리적으로 선도해야 해 강경투쟁 일변도보다 훨씬 어렵다. 이것이 더 나은 대안이다. 강경투쟁 일변도의 노동운동은 딜레마에 갇혔지만 여기에는 딜레마가 없다. 노조 지도부가 힘들겠지만 그래도 분명한 비전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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