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조선, 부실 해양플랜트 떼내 통폐합… '배드컴퍼니' 카드 급부상

[오늘 구조조정협의체 회의…시나리오 뭐가 거론되나]

통합법인 세워 설비 줄이고 강점분야는 살리기

방위사업 통합해 방산 전문조선사 설립도 검토

삼성重·대우조선 합병, 현대·삼성 투톱 구상도

일각선 "무리한 통폐합보다는 재정비 기회줘야"



정부가 지난해 말 조선업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하면서 이미 중소 조선소들은 본격적으로 건조 규모를 줄이는 작업에 착수했다. STX조선해양은 내년부터 고성조선소의 기능을 변경해 부품공장 용도로 바꾸면서 상대적으로 톤수가 적은 탱커와 액화천연가스(LNG)선 위주로 전환한다. 한진중공업은 상선 부문을 축소하고 전투함 같은 특수선 사업에 전념하기로 했다. 대선조선 역시 소형 탱커와 여객선에 특화한 업체로 전환하면서 영도조선소 부지를 매각하고 장비를 다대조선소로 이전할 계획이다.

하지만 정부의 목표인 ‘최대 20% 감축’은 중소 조선소만으로는 무리라고 업계는 본다. 국내 선박 건조 능력의 약 80%를 차지하는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조선업계와 정부·채권단에서는 대형 조선사에 수조원대 손실을 안긴 해양플랜트 부문의 통폐합,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의 합병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제기하는 형국이다.


◇“부실은 서로 합치고 경쟁력은 각자 키우자”… 속도 내는 대형 조선사 구조조정=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정부·채권단에서 흘러나오는 구조조정 시나리오를 보면 부실한 사업들은 업계가 서로 합쳐 털어내 과잉설비를 줄이고 각자 강점 분야만 살려두는 데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핵심은 해양플랜트 부문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영업손실 1조5,401억원 가운데 1조3,000억원, 삼성중공업은 손실액 1조5,019억원 중 대부분이 해양 사업에서 나왔다. 최근 3년간 영업적자가 5조5,000억원에 이르는 대우조선 역시 마찬가지로 해양플랜트 사업으로 빅3가 지난해 입은 손실을 다 합치면 무려 7조원에 달한다.

이에 업계와 채권단에서는 빅3가 해양플랜트를 각자 떼어내 통합 법인을 설립하는 방안이 대두하고 있다. 국내 업계의 역량을 한데 모은 경쟁력 있는 해양플랜트 전문기업을 세우거나 부실자산을 떠안을 ‘배드컴퍼니’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아예 빅3 중 2개의 해양 사업을 소멸시키고 1개사만 남겨 공급과잉을 해소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정부는 해양플랜트 외에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한진중공업·STX가 방위 사업 부문을 통합해 방산 전문 조선업체를 만드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빅3 가운데 산업은행 등이 대주주로 있는 대우조선을 삼성중공업과 합쳐 현대·삼성 투톱 체제로 조선업계를 개편하는 구상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두 회사 모두 경상남도 거제도에 위치해 합병 시 시너지가 크다는 계산에서다. 하지만 중공업 확장에 소극적인 삼성그룹이 대우조선 인수를 꺼리는 게 걸림돌이다. 이 때문에 대우조선의 각 사업 부문을 떼어 복수의 조선업체에 매각하는 방안도 최근 거론되는 실정이다. 이 밖에 대형 조선사를 제외하면 다음 규모인 성동조선해양과 STX를 한 회사로 합치는 시나리오도 지난 2014년부터 꾸준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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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통폐합보다 2~3년 유동성 지원하며 지켜보자” 주장도=정부는 과거 조선 산업에 메스를 들이댔던 일본처럼 빅3를 포함한 국내 조선사들의 과잉설비를 줄이고 벼랑 끝에 몰린 업계를 구원할 방침이다. 일본은 오일 쇼크 이후 1978년 7월 국내 건조 도크의 수를 138기에서 73기로 줄였고 생산 규모도 997만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에서 619만CGT로 36.6% 감축했다. 이어 1986년 6월 엔고 사태 당시 건조 도크의 수를 73기에서 47기로 또다시 줄였다. 건조 능력도 603만CGT에서 460만CGT로 23.6% 축소했다.

주요 기업 간 인수합병(M&A)도 활발히 이뤄져 미쓰비시중공업과 히타치제작소가 화력발전 부문을 분리해 미쓰비시히타치파워시스템즈라는 통합 회사를 세웠고 미쓰비시중공업과 IHI는 항공기 엔진 사업을 분할해 신설법인을 설립했다.

이런 가운데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가 조선업계의 통폐합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기보다 당분간 자금에 숨통을 틔워주면서 각자 자율적으로 경쟁력을 키우는 방안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일본이 구조조정 후 한국에 밀려 조선업 세계 1위를 내준 사례를 교훈 삼아 구조조정에 보다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용환 서울대 교수는 “2~3년간 유동성을 지원하면서 빅3가 숨을 돌리고 사업을 재정비하는 방안도 검토해봄 직하다”며 “현재 일본에서 대형 도크를 건설하고 있는데 한국은 오히려 줄여나간다면 장차 전 세계 선박 수요가 본격 회복세를 맞이할 때 일본에 수주를 상당 부분 뺏길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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