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전기차와 자동차...누가 먼저일까



전기차와 자동차. 어느 게 먼저일까. 전기차가 앞섰다. 19세기 후반에 전기차가 선보였다. 1882년 4월 29일 독일 베를린 외곽도시 할렌지에서는 540m 구간에 설치된 전선과 줄로 연결된 마차가 시내를 달렸다. 개발자 베르너 폰 지멘스는 자신의 발명품에 이런 이름을 붙였다. ‘엘렉트로모테(Elektromote).’ 요즘 기준으로 보자면 이어진 전신주가 공급하는 전력으로 움직이는 시내 버스에 해당된다.

사람들은 이를 신기하게 여겼다. 그럴 만했다. 자동차라는 개념이 아예 없었던 시절이니까. 현대적 의미의 자동차는 이보다 6년 뒤에야 선보였다. 내연기관으로 움직이는 최초의 자동차, 다임러 벤츠의 자동차가 나온 시기가 1888년. 엘렉트로모테는 자동차보다 6년 빨랐다. 아무리 인간의 진보에 대한 끝없는 가능성을 믿었다고 하는 19세기 후반, 웬만한 발명품은 관심을 끌지 못하던 시절이었어도 ‘엘렉트로모테’에는 사람들이 몰렸다. 말도 없이 움직이는 마차였으니.


엘렉트로모테를 개발한 인물은 베르너 폰 지멘스. 19세기 후반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난 제 2차 산업혁명을 이끈 사람 중에 하나다. 2차 산업혁명이라고 이름 붙였으니 내용은 효율화. 증기가 극복한 마력(馬力)의 한계를 다시금 뛰어넘을 대안으로 전기를 활용하고 전통산업인 제철과 산업전력에 공급하는 게 2차 산업혁명의 핵심 내용이던 시절에 지맨스는 전기의 혁신을 보편화한 일종의 창조인 엘렉트로모테를 선보였다.

엘렉트로모테는 한 마디로 전선에서 전기를 공급받아 정해진 노선을 달리는 운반체. 막 생겨나기 시작한 발전소에서 공급하는 전력으로 2.2kW짜리 전기모터 두 대를 돌려 움직였다. 외양은 마차처럼 생겼으나 또 다른 혁신인 전기를 동력원으로 장착한 엘렉트로모테는 성공했을까. 반은 성공했고 반은 실패했다. 일반인들이 아무리 환호해도 시범운행 기간인 6월 초까지 기술을 사겠다는 사업자가 나타나지 않은 탓이다.


지멘스의 착상이 현실화한 것은 1900년부터. 파리박람회에 버스 형태의 차량이 등장한 후 미국과 영국·독일·러시아에서 도시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더러는 착상을 바꿔 도시형 철도와 합쳐서 신제품을 내놨다. 철도 레일을 설치할 여력이 없었던 국가들은 지멘스처럼 바퀴로 움직이는 도시형 버스 노선을 깔았다. 그 이름이 ‘트롤리 버스’. 시내 전차와 트롤리 버스는 진화를 거듭했으나 2차 대전 이후 급속하게 사라졌다. 도심 교통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이유에서다. 지맨스의 혁신도 잊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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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형 전기버스, 또는 시가전차는 과연 평양에서나 볼 수 있는 저가의 구닥다리 운송수단일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최첨단 환경친화적 도심운송 수단으로 각광 받고 있다. 트롤리 버스와 시내형 기차(트램)의 장점을 혼합한 새로운 교통수단이 유럽 등지에서 각광받고 있다. 건설비용도 지하철의 10~30% 수준이어서 도입 국가가 늘어나는 추세다. 하와이같이 간선교통망 전체를 엘렉트로모테, 즉 최첨단 트램으로 교체하려는 지역도 적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진작부터 가능성을 점쳤다. 민관 공동 개발품인 한국형 트롤리버스의 이름은 ‘바이모달’이 제시된 적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시궁창이다. 세종시를 개발할 때 선보이려고 했던 바이모달은 예산을 이유로 단순한 버스 연결망으로 위치가 내려 앉고 말았다. 개발 당시 발표했던 거창한 수출 계획은 실현은커녕 슬금슬금 잊혀지고 말았다.

경제 개발이 선행된 지역, 특히 인구가 감소하는 곳에서는 미래형 운송수단으로 각광 받는 트램 또는 트롤리 버스는 전세계적으로 부활하고 있다. 144년 전 시작돼 100년 전 무렵부터 쇠퇴기에 들어간 구 기술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첨단 운송 프로젝트도 첨단을 뺀 채 운영되고 있다. 예산 부족 탓이다. 앞으로도 우리 앞에 놓인 모든 프로젝트가 이런 전철을 밟을지 걱정된다. 기술 혁신은 구식을 첨단으로 변화시키고 돈을 만든다. 우리에게 기술 혁신의 인자가 있는가. 미래의 자동차라는 전기차에 대응력은 갖고 있는가.

/권홍우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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