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승자의 혼미

승리에 도취되는 순간 생각지 못한 소용돌이가 거세지는 법이다. 더불어민주당이 그 옛날 로마의 교훈을 가슴에 새겨야 하는 이유다./연합뉴스승리에 도취되는 순간 생각지 못한 소용돌이가 거세지는 법이다. 더불어민주당이 그 옛날 로마의 교훈을 가슴에 새겨야 하는 이유다./연합뉴스




역사 소설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얼마 전 다시 집어 들었다. 하나의 국가가 역경을 딛고 성공한 뒤, 번영을 충분히 누리고 나서 내부 권력투쟁으로 저물어가는 과정을 세밀하고도 박진감 넘치게 그려낸 작품이다. 시오노의 분석은 전문 역사가들의 관점에서는 다소 문제가 있다고 하나 연구보다는 통찰을 원하는 독자들에게는 이 이상의 글이 없지 않을까 싶다.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로마가 거대 제국인 카르타고를 상대로 일으켰던 ‘포에니 전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직면했던 위기에 대한 시오노의 분석이었다. 그는 지중해에서 경쟁자를 물리치고 완전히 상권과 제해권(制海權)을 장악한 로마에게 가장 큰 적은 외부가 아닌 자신이었다고 주장한다. 우선 로마는 승전(勝戰) 이후 빠르게 내부 분열의 소용돌이로 빠져 들었다. 귀족 세력과 평민 세력 간의 갈등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이념 정치, 철학 정치를 지향하는 집단과 이권에 기반한 타협의 정치를 지향하는 집단 사이에 접점을 마련할 방법도 없었다. 카르타고와의 싸움을 성공으로 이끈 스키피오 장군의 손자 그라쿠스 형제가 대표적이었다. 그들은 지금으로 따지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급진 개혁파 정치인들이었다. 귀족들의 토지 겸병(兼倂)을 막고 시민들의 최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갖가지 법안을 내놓았지만, ‘자기들 만의 개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끝내는 원로원 세력에 의해 그라쿠스 형제가 살해당하는 것으로 혁신의 역사는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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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합의와 토론에 의해 균형 잡힌 거버넌스(governance)를 유지하던 공화정이 내부 모순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리더 없는 사회를 만난 로마 시민들은 그들의 끓어 오르는 욕망을 해소해 줄 수 있는 지도자를 원했다. 과거 로마에서 볼 수 없었던 군사 독재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마리우스라는 인물과 술라라는 인물이 대표적이었다. 이들은 초기 공화정의 리더들과 달리 전쟁터에서의 경력을 토대로 정계에 입문했다. 그들의 정치는 확실했다. 단순명료하고 과감한 대처가 시민들의 이목을 끌었다. 실업자 대책, 농민 구제책, 아프리카, 그리스 등을 상대로 한 안보 대책 등 어느 것 하나 명확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반대파를 제거하고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데 엄청난 정력을 쏟았다. 인기 많은 리더는 순식간에 참주(僭主)로 변해 로마를 통제 사회로 몰아 넣었다. 로마는 시민(市民)이 될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합의와 토론을 거쳐 국가를 이끌어 가는 민주 공화정 사회였다. 시오노는 경제적, 군사적으로 승리한 이후 건강한 방향을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로마의 모습을 ‘승자의 혼미’에 빗대었다. 예로부터 가져 보지 못한 것을 가까스로 얻게 된 이들은 그 영광에 도취되어 온갖 실수를 저지르는 법이다. 그러다 보면 애먼 사람이 다음 세대의 리더로 등장하는 모습을 역사 속에서 종종 직면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카이사르(Caesar)다.

승리 이후의 내부 권력 투쟁,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뉴 리더의 등장 과정을 지켜보며 기자는 지금 정권 교체 직전의 분위기를 즐기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을 떠올렸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지지하는 그룹과 문재인 대표 중심의 친노, 친문 그룹 사이의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다. 더민주는 포에니 전쟁에 승리한 로마처럼 거여(巨與) 제국을 이기고 당당하게 승리한 것 같지만, 아직 많은 것이 불안하다. 전쟁에 이긴 후 로마의 혼란상은 카이사르라는 생뚱맞은 리더의 등장을 맞이하고서야 수습될 수 있었다. 더민주가 남 좋은 일 하고 싶지 않다면, 로마의 교훈을 가슴에 새기고 정신 좀 차리시길 바란다.

김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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