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1일이 되면 심장마비로 쓰러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대신해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을 이끈 지 2년이 된다. 그동안 삼성은 외형은 물론 내부적으로도 큰 변화를 겪었다. 한 달에 한 번꼴로 기업 매각이나 합병 등 굵직굵직한 뉴스가 쏟아지는 시기도 있었다. 그만큼 이재용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2년 이재용 부회장 체제의 삼성을 5개의 키워드로 정리해봤다.
①IBM식 선택과 집중
지난 2년 이재용 부회장이 이끄는 삼성그룹은 선택과 집중을 위한 시간으로 평가받는다. 큰 그림은 IBM을 염두에 둔 모습이다. 시의적절하게 사업구조를 바꿔 하드웨어 기업에서 정보기술(IT) 업체로 거듭나는 한편 주력사업에 힘써 글로벌 영향력을 유지하는 모습을 벤치마킹해 구글이나 애플·페이스북 등 글로벌 IT 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기업으로 거듭나려는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삼성그룹이 지난 2014년 11월 화학·방산 계열사는 한화그룹에, 2015년 10월 화학 3개 계열사는 롯데그룹에 매각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삼성물산의 건설 부문이나 제일기획 매각 소문이 끊임없이 이어졌던 것 역시 구글이나 애플이 건설이나 광고업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다. 대형 선단과 같던 삼성의 모습은 이 부회장이 맡은 후 선제적 구조조정을 통해 전자·금융·바이오 세 축으로 새롭게 재편됐다. 핵심 주력사업에 대한 투자 역시 이어오고 있다. 반도체는 지난해 5월 평택에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산라인을 착공했다. 클라우드(프린터온)나 사물인터넷(스마트싱스), 모바일 결제(루프페이), 스마트카(빈리) 등 미래 먹거리에서는 적극적으로 인수합병(M&A)과 투자에 나서고 있다.
②스타트업 삼성
빠른 추격자였던 삼성은 거대한 조직 구조를 위에서 아래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관리의 삼성’이 원동력이었다. 반도체와 전자 산업에서 승승장구했던 것 역시 늦은 야근과 반복되는 회의를 통해 주어진 일은 반드시 해낸다는 문화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이 이끄는 삼성은 더 이상 관리의 삼성이 아니다. 벤처기업처럼 세포와 같은 팀들이 살아 움직이는 ‘스타트업 삼성’을 추구하고 있다. 반도체와 스마트폰 부문에서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삼성에 필요한 것은 관리가 아닌 혁신이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회의를 되도록 줄이기 위해 최고경영진까지 나서고 월급날 일찍 퇴근하는 ‘패밀리 데이’나 CE 사업부의 정시 퇴근 제도인 ‘불끈 데이’ 등의 문화 혁신도 이 때문이다.
③실용주의
이재용 부회장이 해외 출장 때 별도 수행원 없이 혼자 서류가방과 여행 가방만 들고 직접 출국 절차를 밟는 모습은 이제 이상한 모습이 아니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내에 있는 회장 비서팀을 해체시켰고 지난해 10월 전용기 3대와 보유 헬기 6대를 매각하고 삼성생명 태평로 본관을 중견 건설업체인 부영에 5,000억원대에 매각한 것 역시 자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자는 이 부회장의 의지다. 삼성이 최근 프레너미(친구이자 적)로 평가 받는 애플에 대규모 소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공급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부회장의 실용주의 덕이라는 분석이다. 이 부회장은 올해 초 애플의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필수적인 일본 OLED 핵심 장비회사인 캐논토키의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장비 독점공급을 받아낸 게 계약 성사의 결정적 성공 요인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④책임경영
2014년 연봉킹(연봉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은 신종균 삼성전자 IM 부문 사장이었다. 하지만 1년 만에 순위가 달라졌다. 2015년에는 권오현 삼성전자 DS 부문 대표이사가 역대 최고 실적을 달성한 반도체 사업 성과에 힘입어 연봉킹에 올랐다. 권오현 부회장의 연봉은 전년 대비 50억원 늘어난 149억원이었다. 반면 신종균 사장은 47억원으로 100억원 가까이 줄었다. 성과를 내면 보상한다는 책임경영 체제가 명확하게 자리 잡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최근 권오현 부회장이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를 맡고 기존 박동건 사장이 삼성전자 DS 부문 사장급 보좌역으로 자리를 옮긴 것 역시 이재용 부회장식 책임경영의 모습이 반영된 것이라는 평가다. 현장경영 역시 이 부회장의 삼성을 설명하는 주요 단어다.
⑤신성장 동력
이재용 부회장 체제가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면서 업계에서는 삼성만의 신성장 동력에 대한 그림이 나와줘야 할 때라는 분석이 많다. 전자·금융·바이오로 판을 새로 짰지만 금융과 바이오 부문에서는 아직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금융 부문은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설, 삼성카드 등 계열사 매각설이 아직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경영 능력을 평가하기에는 아직 시기적으로 이르지만 무언가를 해보겠다고 달려드는 모습은 대외적으로 불확실한 경제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박사는 “이재용 부회장은 추격자에서 이제는 선도자가 된 삼성의 미래를 이끌어야 하는 위치”라며 “변화된 환경에 대응해 무엇이든 하겠다고 나서는 모습은 긍정적이지만 삼성의 다음 성장 동력이 무엇인지를 보여줘야 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