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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남매의 눈물겨운 운동화 바꿔신기

조휴정PD의 Cinessay 49 <천국의 아이들>

가난함을 딛고 아름답게 자라는 이란의 아이들을 그린 영화 ‘천국의 아이들’의 포스터가난함을 딛고 아름답게 자라는 이란의 아이들을 그린 영화 ‘천국의 아이들’의 포스터


가난한 집 아이들은 빨리 철이 드는 편입니다. 고생하는 부모를 생각해 갖고 싶거나,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말을 삼가게 되고 친구들 앞에선 가난한 티를 내지 않으려는 ‘마음의 이중고’를 겪으며 자라기 때문입니다. 지금이야 상상도 할 수 없겠지만, 1970년대 교사들은 교실에서 공공연히 학생들의 가정환경 조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집에 자동차, 냉장고, 전화, 전축, 텔레비전 등이 있는 지를 친구들 앞에서 일일이 밝혀야 할 때의 아이들이 느낄 부끄러움을 생각한다면 너무 잔인한 일이었습니다. 집에 선풍기가 있는 학생들에게 손을 들라는 선생님의 지시에 거짓으로 손을 들면서 조마조마했던 순간이라거나 친구 집에서 예쁜 컵, 슬리퍼, 잠옷 등 소소한 물건을 보면서 느꼈던 부러움, 하교길에 눈과 코를 자극하던 떡볶이, 튀김, 아이스크림의 달달한 냄새 등은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사람이라면 어른이 되어서도 아픈 기억으로 간직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경험을 가진 관객들에게 영화 <천국의 아이들>(이란, 1997년작, 마지드 마지디 감독)은 단순한 영화 이상의 작품으로 남을 겁니다.


주인공은 테헤란의 가난한 남매, 알리와 자라입니다. 알리는 여동생 자라의 구두를 수선하고 오는 길에 하나뿐인 구두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알리는 이 사실을 아픈 엄마, 허드렛일을 하며 고생하는 아빠에게 말할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착한 여동생 자라는 이런 오빠의 실수를 감싸주려고 오빠의 운동화 하나를 두고 서로 번갈아가며 신습니다. 오전반인 자라는 오빠가 기다릴까 봐 수업이 끝나자마자 번개처럼 뛰어오고, 알리 또한 늦을까 봐 쏜살같이 달려갑니다. 이 눈물겨운 운동화 바꿔 신기는 중간에 위기를 맞기도하죠. 자라가 도랑에 운동화 한 짝을 빠뜨렸을 때입니다. 도랑의 물살이 어찌나 빠르던지 자라는 운동화 한 짝을 건져내지 못하고 관객들 마음까지 쪼그라들 것 같은 순간, 한 어른의 도움으로 다행히 건져냅니다. 그동안 자라는 얼마나 애가 탔을까요. 그러던 어느 날, 자라는 자신의 구두를 신은 여학생을 발견하고 오빠와 함께 뒤를 따라갑니다. 그런데 남매는 차마 구두를 돌려달라는 말을 못하고 발길을 돌립니다. 그 소녀의 집은 자신들보다 더 가난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가장 감동적으로 봤습니다. 얼마나 찾았던, 얼마나 간절한 신발이었습니까. 뺏기지 않은 것에도 터무니없는 욕심을 부리는 우리 어른보다 백배천배 훌륭한 거죠. 그래서 기회가 온 걸까요? 남매에게 희망의 소식이 들려옵니다. 달리기 대회가 열릴 것이고, 3등 상품이 운동화라는 겁니다! 달리는 거라면 알리를 따라올 사람이 있겠습니까. 천신만고 끝에 대회에 참가한 알리는 어떻게든 3등을 해야하는데! 그런데, 너무 잘 달려서 안타깝게도 1등을 하고 맙니다. 커다란 알리의 눈에서는 뚝뚝 눈물이 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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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이렇게 순수하고 예쁜 어린배우들을 찾아냈을까요. 알리와 자라의 눈물과 웃음은 지금 봐도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가난도 사실, 가족의 사랑이 있으면 꼭 슬픈 것만은 아니죠. 오히려 거친 세상을 이겨낼 용기와 끈기, 가족을 지키고 싶은 희망을 주는 큰 선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5일은 어린이날입니다. 365일 어린이 날인 것처럼 풍요로운 세상이지만, 해주는 게 많은 만큼 바라고 통제하는 것 또한 엄청나게 많아진 부모님 때문에 요즘 아이들도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아 보입니다. 모두 가난했던 그 시절보다 지금 가난한 어린이들은 훨씬 더 힘들 수도 있겠지요. 어린이 학대사건도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도랑에 빠진 자라의 운동화를 어른이 쉽게 건져냈듯이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갖는다면 어린이들의 위기와 고민이 훨씬 줄어들 겁니다. KBS1라디오 <생방송 오늘 이상호입니다>연출

김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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