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은행에는 은행 꼬치가 없다?!

[식담객 신씨의 밥상] 여섯번째 이야기-은행꼬치



점심 햇살이 따갑습니다. 이제부터는 낮에 자켓을 입으면 고될 것 같습니다.

한 달 반 전만 해도 겨울 외투를 입고 다녔는데, 어느새 반팔 셔츠를 꺼낼 생각을 합니다.


세월은 나이듦보다 더 빨리 흐르는 것 같습니다.

오래전 5월이 떠오릅니다.

1995년 봄, 군입대를 기다리며 휴학을 했습니다.

한푼이라도 살림에 보태려고, 지하철 2호선 신천역에서 신문을 팔았습니다.

스포츠연예신문의 인기가 하늘에 닿을 무렵이라, 장사는 잘 되는 편이었습니다.

열차가 지날 때마다 공기가 혼탁해집니다.

보이지 않아서 느끼지 못하지만, 먼지량은 어마어마합니다.

지금처럼 스크린도어도 없을 때였습니다.

처음 일주일 동안은 기침 때문에 밤새 잠들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바지런히 움직이는 호프집 아르바이트 벌이가 시간당 2,000원이던 시절이었습니다.

뿌리 내린 듯 앉아 있는 단순한 일에 매시간 300원이나 더 준 데는,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온종일 좁은 공간에 앉아 신문을 팔고 매대를 정리합니다. 신문이며 잡지를 열중해서 읽어도, 시간은 더디게만 갑니다.

스물 한 살 청년은 맥주도 마시고 아리따운 이성도 만나고 싶지만, 일을 마치면 밤 아홉시가 넘습니다.

그래도 토요일에는 여섯 시에 일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5월 어느 주말, 누군가 매대를 두드립니다.

“어이~ 대갈장군, 맥주 마시러 가자!”

형이었습니다.

두살 위였던 형은 그 무렵 군대에 다녀와, 광고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신천역 새마을시장으로 향합니다.

지금과 달리 새마을시장 큰길은 노점이 가득 들어차, 국수며 오뎅을 팔았습니다.

잔치국수 한 그릇에 꼬마김밥을 시킵니다. 십원짜리 동전도 소화시킬 듯한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은 먹어도 먹어도 허기집니다.

“맥주 마셔야지~”

시장통을 지나 투다리에 들어갔습니다. 맥주란 말엔 설렘에 배어 있습니다.

새하얀 생맥주 거품에선 왠지 달콤한 크림맛이 날 것만 같습니다.

1학년 새내기 시절 학교에서 가장 존경했던 위인은 생맥주에 통닭을 사주던 형이었고, 가장 두려운 사람은 단무지 한 접시에 소주를 서너 병씩 마시던 선배였습니다.

“생맥주 두 잔 먼저 주세요.”

주문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형이 입을 뗍니다.


“아니요, 생맥주 말고 하이트 세 병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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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cc 생맥주는 1,200원, 하이트 병맥주는 2,000원이던 시절이었습니다.

“형, 병맥주 비싼데...”

형이 빙긋 웃으며 말합니다.

“짜식~ 오늘은 우리도 병맥주 마셔보자. 여기요, 꼬치 하나 주세요”

모둠꼬치가 나왔습니다.

푸짐하고 다양한 꼬치들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고기 사이사이에 파를 끼운 닭산적, 쫄깃한 염통과 모래집, 동글동글 깻잎과 소시지 베이컨말이...

술 한 모금에 꼬치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소년시절을 추억합니다.

국민학교에 입학해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참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세상에 휘청거릴 때마다 형은 내게 형이고, 벗이고, 아버지였습니다.

술잔을 부딪쳐 찌글찌글한 기억을 떨어냅니다.

접시를 보니, 어느새 황녹색 알맹이를 꿴 꼬챙이만 하나 덜렁 남았습니다.

“형, 이거 먹어.”

“아냐, 너 먹어.”

“아니, 형이 형인데...”

그렇게 승강이를 하다가 결국 군입대가 예정된 아우가 꼬치를 들었습니다.

살짝 눈시울이 아리며, 옛 속담 하나가 스쳐갔습니다.

이래서 형만 한 아우 없구나.

“그런데 형, 이게 무슨 꼬치야?”

“몰라...”

“그런데 나보고 먹으라고?”

“넌 아무거나 잘 먹잖아.”

잠시 머쓱한 분위기에, 애틋한 형제애가 다시 한 번 움틉니다.

시원한 맥주가 참 따스한 밤이었습니다.

/식담객 analogoldman@naver.com



식담객 신씨는?

학창시절 개그맨과 작가를 준비하다가 우연치 않게 언론 홍보에 입문, 발칙한 상상과 대담한 도전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어원 풀이와 스토리텔링을 통한 기업 알리기에 능통한 15년차 기업홍보 전문가. 한겨레신문에서 직장인 컬럼을 연재했고, 한국경제 ‘金과장 李대리’의 기획에 참여한 바 있다. 현재 PR 전문 매거진 ‘The PR’에서 홍보카툰 ‘ 미스터 홍키호테’의 스토리를 집필 중이며, PR 관련 강연과 기고도 진행 중이다. 저서로는 홍보 바닥에서 매운 맛을 본 이들의 이야기 ‘홍보의 辛(초록물고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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