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서포트(지원)가 없었으면 실패했을 겁니다.”
이연수 전 외환은행 직무대행의 생각은 확고했다. 하이닉스와 현대건설을 살려낼 때 정부의 역할이 없었으면 구조조정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정부 주도 식 구조조정을 두고 “옛날 방식”이라는 비판이 나오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주채권은행의 역할이 중요하고 채권단이 합심해 일 처리를 해야 하지만 그 앞에 정부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전 직무대행이 말하는 구조조정 성공의 3요소 가운데 가장 먼저 꼽는 것도 ‘정부 서포트’다.
그는 “채권금융사에만 맡겨서는 구조조정이 쉽게 되지 않는다”며 “큰 그림은 정부와 채권단이 함께 그리고 채권단이 강력하게 실행하되 정부가 서포트해줘야 한다”고 단언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채권단에 힘을 실어주고 여론조성도 도와줘야 구조조정이 잘되지 그냥 내버려두면 (채권단이) 상당히 힘들 수밖에 없다”며 “채권은행마다 의견이 서로 다른데 지금 거론되는 해운은 해외채권자가 있는 데다가 용선료 문제도 있어 간단치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현 상황은 다르다. 구조조정을 담당하고 있는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말 “기업 구조조정은 채권단이 주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못을 박은 상태다. 채권단이 기업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으며 스스로 채권을 가지고 있는 이해집단인데다 정부가 직접 개입하면 통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 탓이다.
이 전 직무대행은 “아마 대외적인 여러 상황 때문에 정부에서 그렇게 얘기하지 않겠느냐”며 “과거 경험을 보면 정부가 여러 가지 안을 검토할 텐데 빨리 1안·2안·3안을 만들어 그것을 협의해 밀고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당국의 역할론을 강조하는 것은 외환위기 때와 달리 지금은 구조조정에 대한 공감대를 얻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달러를 수혈 받을 당시만 해도 “나라가 망한다”는 위기감에 국민과 회사 임직원들이 구조조정을 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그는 “그때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당위성과 공감대가 있었다”며 “이 때문에 채권단이나 정부에서 구조조정을 하기가 수월했지만 지금은 고용문제도 있고 공감대를 얻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특히 채권단에만 맡기면 구조조정을 위한 적기를 놓칠 수 있다. 그는 “채권단이 알아서 하게 두면 서로 의견이 갈려서 채권이 적은 은행은 우리는 포기하겠다고 나올 수 있다”며 “예를 들어 해운사업 합리화 같은 큰 그림을 그려 놓은 게 있을 것인데 이를 바탕으로 주채권은행이 면밀히 검토해 법정관리를 넣든지 신규지원이나 출자전환을 하되 오너 책임 묻는 식으로 하든지 어떤 방식이든 빠르게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전 직무대행은 또 “현장을 떠난 지 오래됐고 조선이나 해운은 자세한 상황 파악은 되지 않는다”면서도 “지금 상황으로는 주채권은행이 산업은행이 돼야 하는데 산업은행하고 정부하고 잘 협조해 이번 구조조정을 잘 마무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어떤 식으로든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