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8월 지구촌을 뜨겁게 달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우리 선수들이 한복을 재해석한 단체복을 입고 입장한다. 민족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한복의 동정은 재킷 앞 테두리로, 태극기와 브라질 국기의 컬러는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4색 매듭 스카프로 재탄생했다. 그 중심에는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에 이어 4년 만에 대한민국 단체복 디자인을 총괄 지휘하는 김수정(43·사진) 빈폴 남성 총괄 디자인실장이 있다.
김 실장은 9일 서울 도곡동 삼성물산 패션부문 본사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전통 미를 상징하는 한복에서 영감을 받았다”며 “직선과 곡선이 조화를 잘 살려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가장 글로벌한 디자인이 나온 것 같다”고 밝혔다.
“런던올림픽 단복은 1948년 런던올림픽 단복을 모티브로 ‘영광 재현 1948’을 콘셉트로 담았던 만큼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불굴의 스포츠 정신으로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자 했던 선배들의 열망을 표현하는 데 주력했죠. 이번에도 단복 디자인을 맡게 되면서 고민이 컸는데 은근함과 섬세함이 포인트인 한복을 모티브로 다양한 시도를 했다는 데서 의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재킷 앞쪽에서 눈길을 끄는 흰색 라인은 한복의 동정을 모티브로 삼았으며 바지는 밑으로 내려갈수록 폭이 좁아져 남성의 한복 바지를 연상시킨다. 화려한 한복의 색감을 고스란히 담기 위한 김 실장의 고심도 엿보인다. 남성은 빨강과 파랑 물방울 무늬가 들어가 있는 넥타이를, 여성은 브라질과 한국 국기를 상징하는 노랑·초록·빨강·파랑이 섞인 스카프를 목에 두른다. 특히 스카프는 여러 색상의 천을 붙여 만든 조각보에서 영감을 얻었다. 물론 제작 과정이 쉬웠던 건 아니다. 평면적인 옷감을 직선으로 재단한 뒤 주름을 잡거나 접었을 때 나오는 한복 특유의 우아한 입체감을 살리는 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
김 실장은 “한복은 은근한 아름다움이 포인트인 만큼 한국을 대표하는 우리 선수들의 옷에도 은근하면서도 섬세한 매력이 그대로 묻어나길 바랐다”며 “단복 재킷을 입었을 때 각자 체형에 맞는 자연스러운 공간미가 형성되도록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리우올림픽 단복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탁월한 기능성에 있다. 김 실장은 단체복 하의로 ‘오염 걱정 없는 화이트 팬츠’를 선보였다. 이름 그대로 와인이나 커피, 케첩을 쏟더라도 ‘더러워지지 않는’ 첨단 기술이 적용된 옷이다.
‘옷에 오염방지 기능을 넣자’는 아이디어는 지난해 5월 중요한 미팅을 앞두고 커피 얼룩으로 곤란을 겪던 직장 상사를 지켜보다 나왔다고 한다. 실현 불가능할 것만 같던 그의 아이디어는 미국 나노텍스의 나노 가공 기술을 만나 6개월만에 결실을 맺었다.
“뭐라도 튈까 싶어 여벌의 와이셔츠를 가지고 다니는 직장인이 적지 않다”는 김 실장은 ‘생활 속 불편함을 파악하는 능력’이 디자이너의 필수 요건이라고 강조한다. 깔끔한 인상을 주려고 노력하는 회사원의 고충을 진심으로 이해해야만 오염방지 의류 같은 신제품이 나올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다.
‘튀는 옷보다는 기본 아이템을 멋스럽고 편안하게 입을 수 있기를 원하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읽어내는 그의 노력은 지난해 물빨래가 가능한 딜라이트 린넨을 비롯해 올해의 야심작 오염방지 의류, 그리고 한복에서 영감을 얻은 리우올림픽 단복까지 히트상품의 원동력이 된 셈이다.
일상생활의 불편함을 읽어내 이를 디자인에 반영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김 실장은 디자인 철학의 기본을 라이프스타일에서 찾기 때문이라고 귀띔한다. 실제로 그는 커피숍이나 레스토랑은 물론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SNS까지 온·오프라인 공간을 망라해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세밀하게 관찰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건강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산을 타려고 아웃도어브랜드를 구입하고, 알러지가 있는 여성이 천연 소재의 옷을 찾는 것처럼 옷을 선택하는 기준은 바로 라이프스타일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요즘 남성 패션이 기본 디자인에 다양한 기능성이라고 규정하는 김 실장은 차기 패션 트렌드가 ‘힐링’이라고 말한다. “힐링, 즉 휴식에 대한 욕구를 감안하면 친환경(Eco)을 접목한 기능이 바로 패션의 다음 흐름이 아닐까 싶어요. 단순한 에코가 아니라 자기 힐링, 휴식, 안식의 차원에서 소재는 물론 기능, 디자인까지 전면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한번 받기도 힘들다는 ‘자랑스러운 삼성인상’ 디자인 부문상을 세 번씩이나 거머 쥐었던 김수정 실장. 그가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는 뭘까. “디자이너로서는 정점에 오른 것 같아요. 30대때 꾸었던 꿈을 지금은 이룬 것 같습니다. 이제는 50대가 됐을 때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 인생 후반기의 꿈을 꿔야 할 듯 합니다.”
/정민정·김나영기자 jminj@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