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흙수저 市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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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피아노와 기타 연주를 좋아했다. 박사과정을 마치면 교수가 돼 학생들 앞에서 강의하는 꿈도 꿨다. 하지만 지도교수의 한마디는 27세 이탈리아 청년 노르만 자르코네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실력은 있는데 잘 나가는 든든한 친인척이 없으니 교수 되는 것은 단념해라.” 며칠간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는 결국 2010년 9월13일 시실리의 팔레르모국립대 건물 7층 옥상 난간에서 담배를 한 대 피운 뒤 몸을 던졌다. 절망 속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흙수저의 비극에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부패로 얼룩진 이탈리아 대학의 교수 임용 관행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지만 바뀐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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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금수저’ 얘기는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현실이 아니다.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지구촌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보편적 현상이 된 지 오래다. 록펠러 가문의 넬슨 록펠러는 1958년 뉴욕 주지사로 당선된 후 4선을 했고 그의 동생 윈스럽 역시 1966년 아칸소 주지사로 당당히 입성했다. 프랑스에서는 아버지로부터 ‘다소’ 그룹을 물려받은 세르주 다소 회장이 파리 동쪽의 소도시 코르베유에손 시장에 오르기도 했다. 물론 흙수저들의 반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2년부터 2013년 말까지 뉴욕시장을 3번 연임하고 한때 미국 대선 출마설까지 나돌았던 블룸버그 최고경영자(CEO) 마이클 블룸버그의 아버지는 평범한 다이어리 업체 회계 담당자였다.

흙수저의 성공담이 또 등장했다. 지난 5일(현지 시간) 치러진 영국 런던 시장 선거에서 파키스탄 이민자 가정 출신의 사디크 칸 노동당 후보가 보수당 후보를 압도적 표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칸 당선자의 아버지는 25년간 버스 기사로, 어머니도 재봉사로 생계를 유지했고 자신 역시 어렸을 때 신문 배달과 공사장 막노동을 전전하며 밑바닥 인생을 경험했다고 한다. 해외 토픽으로 간간이 들려오는 ‘개천에서 용 났다’는 소식이 ‘금수저’와 ‘헬조선’에 신음하는 우리 청년들에게 잠시나마 위안을 줄 수 있을까. /송영규 논설위원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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