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기획재정부 역외소득·재산자진신고기획단에 “해외에 재산이 있다”고 스스로 신고한 건수만 526건이다. 지난해 10월부터 6개월간 숨겼던 역외소득과 재산을 신고하면 과태료와 형사처분을 감경해주는 제도를 운영했는데 마지막 달인 3월에 신고가 몰린 것이다. 전체적으로는 642건, 5,129억원이 신고됐고 총 1,538억원의 세금이 걷혔다. 국세청도 지난해 223건의 역외탈세를 조사해 1조2,861억원의 세금을 추징했다.
한국과 미국이 맺은 ‘금융정보자동교환협정(FATCA)’은 서로 자국민의 계좌와 이익 등 금융정보를 자동으로 교환해 ‘역외탈세’를 막자는 취지다. 협정이 비준되면 한국은 미국 내 은행에 연간 이자 10달러(약 1만1,000원)를 초과하는 예금계좌를 개설한 우리 국민들의 금융정보를 매년 9월 통보받게 된다. 이자율을 1%로 가정하면 1,000달러(110만원) 이상 들어 있는 예금계좌가 대상이다. 반대로 미국도 한국에 개설된 미국인의 계좌정보(5만달러 이상)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국회는 역외탈세를 획기적으로 막을 수 있는 FATCA 비준에 대한 논의를 지난해 10월 단 한 차례만 하고 덮었다. 국회 관계자는 “의원들 간에도 민감한 역외 금융정보가 자동으로 수집되는 데 대한 의견이 다르다”면서 “아예 논의조차 안 하는 것은 의도적으로 무시한다고 봐야 한다”고 전했다.
국회가 FATCA 비준을 두고 허송세월을 보내면서 국내 금융사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9월까지 협정이 발효되지 않으면 내년부터 미국이 내국세법(IRC)에 따라 미국에서 발생한 이자와 배당 등 원천소득에 30%의 세금을 물리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금융사는 미국에 투자해 얻은 수익에 대해 평균 12.3%(이자소득 12%, 법인 배당 10%, 일반 배당 15%)의 세금을 미 국세청에 내고 있다. 올해 9월까지 FATCA 비준이 안 될 경우 내년부터는 세율이 17.7%포인트나 높아지게 된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정부가 지난해 국내에 쌓인 돈을 해외로 투자하면 각종 비과세 혜택을 주는 ‘해외투자활성화 방안’까지 내놓았다. 이 같은 해외투자 독려에 지난해 국내 금융사가 해외펀드에 투자한 순자산 규모는 2014년(51조원)보다 10조원 늘어난 61조원으로 증가했다. 전체 펀드에서 40%가량을 차지하는 북미펀드 비중을 감안하면 미국 투자금액도 20조원에서 24조원으로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투자를 하란 얘긴지 말란 얘긴지 모르겠다”면서 “정부와 국회가 이렇게 엇박자를 내는데 어떻게 정책 방향을 믿고 투자에 나서나”라고 꼬집었다.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미 영국과 프랑스·독일·네덜란드 등 선진국들을 비롯한 54개국은 미국과 동일한 협정을 체결한 후 발효를 마쳤다. 9월 내 국회에서 비준이 안 되면 우리만 ‘역외탈세 방지’라는 국제사회의 흐름에 동참하지 않는 꼴이 된다. 더욱이 비준안은 이달 임기가 끝나는 19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으면 자동 폐기된다. 20대 국회가 꾸려지면 정부는 다시 새 국회에 동의안을 요청하고 새로 구성된 외교통일위원회 의원들을 설득해야 하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9월 비준이 어려울 수 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국가 간 신뢰가 달린 문제”라며 “정해진 기한 내에 비준하지 못 하면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가 한국이 역외탈세 방지에 소극적인 국가라고 오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세종=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