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권홍우 칼럼] '이란 방문 경제 성과' 뻥튀기와 매도 사이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靑 과대 포장, 오히려 성과 가려

무조건 반대·폄하측은 더 악의적

차분히 가능성·투자 실익 따져야





청와대가 일을 잘못했다. 알맹이가 적지 않아 보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방문 성과를 띄우려고 한 탓인지 불필요한 오해를 불렀다. 차분하게 살펴보자. 박 대통령의 이란 방문은 적어도 세 가지 측면에서 평균 이상의 점수를 주기에 충분하다.


첫째는 오래된 우호 관계의 복원 노력. 서울에 외국 도시의 이름을 딴 큰 거리가 있는가. 강남 한복판의 테헤란로뿐이다. 테헤란로는 지난 1970년대 중후반 한국과 이란의 찰떡궁합이 남긴 흔적의 상징이다. 친교의 주역인 박정희 대통령과 호메이니 국왕이 독재자로 불행한 최후를 맞고 국제정세가 급변했어도 두 나라는 관계를 이어나갔다. 이란산 원유가 계속 들어오고 한국산 곡사포로 무장한 이란 혁명수비대 포병부대가 이라크군과 싸웠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쌓은 교류의 기초를 따님인 박근혜 대통령이 활용하는 모양새가 나쁘지 않다.

두 번째로 북핵 억제를 위한 국제공조의 확산을 들 수 있다. 물론 이란의 정치적 속내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미국과 대립하는 동안 북한과 절친했던 이란이 과연 우리 편에 설 것인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이란과 최고위급 언로를 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의미가 깊다. 이란과 북한 간 관계는 생각 이상이다. 이란 인공위성의 기반이 바로 북한 기술이며 북한의 최신 고속정에 달린 76㎜ 함포는 이란이 이탈리아제를 데드카피한 제품으로 보인다. 북한과 가까운 이란과의 친교는 우리 안보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미국제 전투기와 무인항공기까지 복제해내는 이란의 대북한 무기 수출 최소화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이란은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국가다. 석유 자원도 그렇거니와 중동 지역의 중심 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잠재력이 크다. 7,920만 인구의 평균 나이가 31세라는 점은 이란의 가능성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공계 인력의 비중과 수준도 여느 중동 국가보다 높다. 1인당 연간 국민소득(per GDP)이 5,306달러에 불과한 나라가 소총에서 각종 미사일, 잠수함과 전투기까지 자체 생산하는 저력은 놀라울 정도다. 국제유가가 오른다면 이란의 경제 성장은 급커브를 그릴 가능성이 크다. 박 대통령이 이란에 석유 수입 확대를 약속한 대목도 고유가 시대를 대비한 장기 포석으로 보인다.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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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성과’ 이후부터다. 박 대통령의 귀국 비행기에서의 기자간담회와 귀국 직전 청와대 발표는 온통 장밋빛 환상뿐이다. 52조원 수주를 쓸어담는다고 하더니 바로 42조원으로 수정되고 ‘역대 최고 성과’라는 자화자찬이 잇따랐다. ‘뻥튀기’라는 지적에도 11일 열린 ‘방문 성과 설명회’를 보면 청와대의 인식에는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국민 여론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느낌까지 든다. 과연 사상 최대이며 ‘대박’인가. 단순한 양해각서(MOU)가 수출이나 수주 실적으로 직결돼왔다면 대한민국은 벌써 국민소득 10만달러를 돌파하고도 남았다. 정부가 MOU 리스트를 자랑스레 공개하자마자 무산된 2조원짜리 사업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청와대의 업적 포장이 습성화했다는 점이다. 취임 후 박 대통령의 해외순방은 13차례 33개국. 해외 나들이를 마칠 때마다 정부가 발표한 ‘투자 유치 성과’를 모두 합치면 62조원(566억달러)에 이른다. 요란하게 실적을 내세운 정부는 정작 실제 투자액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는 꿀 먹은 벙어리다. 이러니 국민들은 전임자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자원 외교’로 43조원을 날렸다는 의심을 사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비교당하면 기분 나쁘겠지만 뻥튀기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가장 고약한 대목이 남았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보인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을 싫어하는 측은 42조원을 모두 신기루로 인식하고 우리가 투자해야 할 250억달러를 날릴 판이라고 주장한다. 가당치 않다. 중국은 400억달러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투자를 안 했다면 안 한다는 비난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정부 홍보와 비판 모두에 과대 포장이 끼인 형국이다. 모두가 냉정을 찾아야 할 때다. 1970년대 중후반 중동 건설 경기가 한창일 때 정부는 중앙정보부까지 동원하며 한국 건설업체 간 과당경쟁을 막았다. 누구보다 차분해야 할 정부가 먼저 흥분하면 되겠는가. 거품이 드러나면 어쩌려고.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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