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13일 총선에서 국민들은 주권자로서 준엄한 심판을 내렸다. 새누리당은 2당으로 전락했고 더민주당은 호남 텃밭을 잃었다. 기존의 두 거대 정당에 불만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신생 국민의당을 지지함으로써 3당 체제가 만들어졌다.
호사가들은 여소야대와 3당 체제의 총선 결과를 두고 여야 협력을 통한 협치를 하라는 국민의 명령이라고들 한다. 이러한 목소리에 동조라도 하듯 대통령은 오랜만에 여야의 원내지도부를 청와대에서 만났고 분기별로 여야대표들을 만나겠다는 약속도 했다. 바람직하고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국민 대다수의 바람과는 달리 20대 국회가 잘 돌아갈 가능성은 희박하다. 우선 내년 12월 대통령 선거까지 불과 1년 반밖에 남지 않았다. 정치세력들은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다. 대선은 제로섬 게임이다. 내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죽여야 한다. 정치세력들 간의 이합집산도 활발할 것이다. 세 당은 모두 심각한 분열의 요인을 안고 있다. 새누리당의 친박과 비박, 더민주당의 친노와 비노, 국민의당의 호남과 비호남은 함께 살기 어렵다. 벌써 정계개편 시나리오들이 자꾸 거론되는 이유다. 정계개편 논의의 초점은 어떻게 하면 대선에서 승리할 것인가가 될 것이다. 이 목표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조합도 가능한 것이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이런 정치현실에서 협치를 기대하는 것은 꿈 같은 일이다. 대통령제 권력구조에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민들의 눈초리가 무서워 잠깐 그런 척 시늉을 낼 따름이다.
19대 국회를 옥죈 소위 국회선진화법도 20대 국회의 원활한 운영에 걸림돌이다. 여야 2당의 합의도 어려웠었는데 3당의 합의는 더 어려울 것이다. 3당 지도부가 합의하지 않으면 국회의원 정수 300명의 60%, 즉 180명 이상의 의원이 찬성해야 법안을 표결에 부칠 수 있다. 3당이 합의해서 생산적인 정치를 하면 오죽 좋겠냐만 이 역시 헛된 꿈이다. 국민의당이 중재자 역할을 해줄 것이라는 헛된 기대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의석 38석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획기적인 계기가 마련될 뻔했었다. 바로 상향식 국민공천제의 법제화였다. 대통령제 권력구조의 원활한 운영에 최대 걸림돌은 정당들의 강력한 내부 규율이다. 국회법 114조 2항은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말짱 헛말이다. 이 규정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공천이 정당지도부에 의한 하향식이 아니라 지역구 주민과 당원의 뜻에 따라 상향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너무나도 척박한 한국 정치의 현실에서 20대 국회가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를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선 5월29일까지 임기가 남은 19대 국회가 시급히 해야 할 중요한 두 가지 일이 있다. 하나는 국회선진화법을 다수결의 원리에 맞게 개정하는 일이며 다른 하나는 차기 선거부터 상향식 공천이 이뤄지도록 법제화를 하는 일이다. 이 두 가지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20대 국회는 19대 국회 이상으로 최악의 국회가 될 것이 뻔하다. 그리고 국민들이 관대하게 정치권을 봐줘야 할 일도 있다. 바로 정계개편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이를 너그럽게 용인해주는 일이다. 내년 12월에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을 뽑기 위해서도 그렇고 새로 선출될 대통령을 중심으로 원활한 국정운영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정진영 경희대 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