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허삼관 매혈기’ 등으로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은 중국 작가 위화가 10년 만에 펴낸 산문집이다. 부록을 포함해 총 41편에 이르는 산문이 실렸는데, 다루고 있는 소재들이 그야말로 다채롭고 변화무쌍하다. 극단적 사회주의 체제에서 시장경제의 핵심으로 단숨에 편입해 들어간 오늘날 중국의 균열과 혼란을 진중하게 읽어낸 글 뒤에는 잉마르 베리만의 영화 ‘산딸기’를 만나며 시작됐던 비디오 영화와의 따뜻한 추억이 따라 붙는다. 그가 문학적 스승이라 자인하는 윌리엄 포크너의 고향 옥스퍼드에서 머물렀던 유쾌한 기록들을 시작으로 열정 넘치는 작가론이 펼쳐지는가 했더니 어느새 일상적 농담이 가득한 소소한 여행기로 접어든다. 작가 지망생이었을 때의 기억들을 풀어놓고 자신의 작품 ‘형제’와 ‘제7일’에 대해 직접 써내려간 창작 일기를 수록하는 등 창작론에 관한 이야기도 한 축을 이룬다.
이토록 소재가 널을 뛰는데도 마구잡이 모음집이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결국 모든 이야기가 중국인 작가로 살아가고 있는 위화라는 개인의 삶에 닿아있기 때문이다. 이 산문집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중국인’과 ‘작가’와 ‘위화’를 조금 더 잘 알 수 있다. 특히 세계의 주목을 받는 동시에 비난 또한 많이 받는 ‘중국인’으로서 살아가는 작가의 고뇌가 드러나는 지점들은 새삼 흥미롭다. 일례로 위화는 라마승과의 대담을 기록하며 ‘중국인으로서 나는 달라이 라마가 주장하는 자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지만 우리 언론이 달라이 라마를 악마로 만드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을 솔직히 밝힌다. 작가로서 외국 기자회견에 참여할 때마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보다 중국 정부의 행동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질문을 더 많이 받는 게 버겁다는 속내도 내심 비친다.
책을 통해 세계적 작가의 필력을 감상할 수 있는 건 또 다른 큰 기쁨이다. 그의 문장은 소박하고 간결하되 위트가 있으며, 그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치졸한 꾸밈이나 덧칠이 없는 정공법이다. 그의 글들은 쉽게 읽히는 가운데 깊은 여운을 남기며, 어느 부분을 펼쳐도 놀라운 즐거움을 안겨준다.1만3,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