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인사이드 스토리] "깡·현금 결제 등 편법 난무 할 것"…김영란법 시행 후 골프약속 안잡아

김영란법에 쏟아지는 재계의 볼멘소리

"경기침체 등 부작용 초래할수도" 중기 14개 단체 법 개정 촉구

"법 시행 반대땐 부패세력 찍힐라" 대기업은 말 못하고 속으로 끙끙



#10대 그룹 임원 A씨는 요즘 하반기 골프 약속을 잡지 않고 있다. 오는 9월 말부터 시행되는 ‘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 금지법’, 이른바 ‘김영란법’에 시범 케이스로 걸리면 안 된다는 생각 탓이다. A씨는 “아직 그룹에서 공식적인 행동지침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개개인이 자발적으로 외부인과의 운동 약속을 자제하고 있다”며 “과잉입법이라는 우려가 있지만 여론 눈치 때문에라도 밖에는 공식입장을 얘기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중견기업의 한 홍보 담당자는 최근 사석에서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5만원권이 훨씬 더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법규가 정한 대로 접대 한도를 맞추기 위해 각종 변칙적인 방법이 나올 것이고 결국에는 현금 지불을 통한 음성적인 거래가 급증할 것이라는 얘기다.


김영란법 시행을 4개월가량 앞두고 눈치 보기를 해오던 재계에 조금씩 변화의 모습이 엿보이고 있다.

시행을 가정한 뒷얘기들이 벌써부터 무성한가 하면, 숨죽이던 모습에서 벗어나 낮은 톤이나마 문제점을 말하는 모습도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일단 큰 틀은 ‘로키(low-key)’ 모드다. 문제가 많다고 보면서도 대놓고 반대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것이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여당인 새누리당이 패한데다 경제민주화가 다시 이슈가 되고 있는 탓이다. 그나마 중소기업은 약자라는 이미지에 공식 입장이라도 낼 수 있지만 대기업은 그렇지 못하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업계의 관계자는 “김영란법은 식사가능 금액을 3만원으로 정하고 있는데 사실 3만원가량의 접대를 받아봤거나 받을 수 있는 국민은 전체로 따지면 많지 않을 것”이라며 “김영란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일반 국민들은 이 법을 찬성하고 있어 외부에 반대의견을 내기가 곤란하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실제 법이 시행되면 금액에 맞춘 결제방법이 새로 생기거나 현금을 쓰는 각종 꼼수가 생길 수 있다”며 “결국은 기업들만 힘들어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제단체 임원 A씨는 기자와 만나 김영란법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입장이 없다”는 답변을 고수했다. A씨는 “내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만 지금 같은 사회 분위기에서 누가 대놓고 반대할 수 있겠느냐”며 “적용대상이나 금액에 수정이 필요하고 최소한 시행 시점을 늦춰야 한다고 보지만 이런 생각을 밝혔다가는 대기업을 대변한다고 비난 받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김영란법을 반대하면 부패세력이요, 대기업만 옹호하는 집단으로 비쳐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이기는 하지만 볼멘소리가 조금씩 커지는 모습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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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호 한국무역협회장이 불을 붙였다. 김 회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김영란법이 금주법처럼 너무 이상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과거 미국에서 시행했던 금주법도 결과적으로 경제적 형편이 좋고 힘 있는 사람들은 다 술 먹고, 상대적으로 사회적 지위가 낮고 힘없는 사람들이 피해 보는 경우가 많았다”며 “일정 규모 이상 식사하는 문제까지 정부가 법적 규제를 가할 경우 행정력이 미치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고 실제 확인하기도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23일에는 중소기업들도 나섰다. 경기침체 같은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이유다. 중소기업중앙회를 포함한 14개 중소기업 단체는 이날 김영란법 시행령에 대한 개정을 촉구했다. 이들은 공동성명서에서 “업종 구분 없이 선물기준을 일률적으로 규제함으로써 선물 매출이 중심인 농축수산물유통과 화훼, 음식점 소상공인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 자명하다”며 “현실 물가를 고려하지 않은 선물 최대 5만원 기준으로는 일부 공산품이나 중국산만 가능할 뿐 국내 농축수산물과 소공인의 수제품은 해당 사항이 없다”고 밝혔다.

기업들은 특히 접대비 한도 50만원 시행 당시와 비교하면서 법의 실효성을 꼬집기도 했다. 부패방지라는 대의명분에 짓눌려 일단 법을 시행하게 되면 ‘식사 및 선물 분위기 변화→중소상공인 및 기업 매출감소→소비침체→경기악화’라는 악순환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덩치가 작은 중소 자영업자는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서는 접대 한도(식사 3만원, 선물 5만원)에 맞춘 새로운 메뉴가 나오는 대신 현금을 이용한 ‘깡’이 활개쳐 기업들만 힘들어질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특히 “고급 한정식집 등의 경우 ‘일부 카드, 일부 현금’ 등의 방식이 동원될 것(대기업 대관담당 C임원)”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적용범위가 너무 광범위하다 보니 과거 노무현 정부 때 시행됐던 공무원윤리강령처럼 사실상 지켜지지 않는 일이 많을 것이라는 말도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 공무원윤리강령은 시행 후 사실상 흐지부지됐다”며 “이번에는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라 상황이 다르기는 하지만 법 적용 대상이 광범위한데다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옭아맬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헌적 요소가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서정명·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

김영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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