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젊은 예술가들이 본 '이 시대의 자화상'

삼성미술관 리움 '아트 스펙트럼'

에코세대 결혼자금 제시

1달러어치 음원 계량화 등

유망 신진작가 작품 전시

옵티컬레이스 ‘가족계획’ /사진제공=삼성문화재단옵티컬레이스 ‘가족계획’ /사진제공=삼성문화재단


취직도, 연애도, 결혼도 포기하고 내집장만과 자녀출산의 꿈마저 접은 ‘N포세대’는 우리 자신과 주변의 이야기다. 대체 한달에 얼마를 벌어야 결혼하고 살 곳을 장만해 아이도 낳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픽디자이너 김형재와 정보시각화 연구자 박재현으로 이뤄진 작가그룹 ‘옵테컬레이스’는 에코세대(1979~1992년생) 미혼 남녀의 소득 분포 조합을 작은 원으로 배치하고 여기에 양가 부모의 소득상황을 고려한 144개의 조합을 통해 예비부부의 결혼자금을 제시했다. 이게 작품이다. 제목은 ‘가족계획’. 통계에 기반한 대규모 설치작품 앞에서 관람객은 자신과 연인의 소득을 따져 거대한 좌표 안에 끼워 넣으며 ‘처지’를 생각하고 주변도 흘끔거리곤 한다. 미래를 ‘답’과 ‘틀’에 가두는 듯해 불쾌할 수 있지만, 이 같은 예술경험이 굴레를 벗어날 의지를 자극한다면 긍정적이다.

삼성미술관 리움(관장 홍라희)의 격년제 신진작가 발굴·지원 프로그램인 ‘아트 스펙트럼’의 올해 전시는 이처럼 젊은 예술가들이 본 ‘작금의 현실’에 주목한다.

김영은 ‘1달러 어치’ /사진제공=삼성문화재단김영은 ‘1달러 어치’ /사진제공=삼성문화재단


작가 김영은은 아이튠즈의 음원 한곡이 1.29달러인 것에 착안해 29센트어치가 빠진 1달러어치의 노래를 재생시간, 음정, 주파수 별 3가지 버전으로 만들었다. 소리를 계량화해 미술작품으로 만든 셈이다. 1달러어치 음악을 감상하는 일은 팥소 없는 붕어빵을 먹는 것 만큼이나 당혹스럽지만,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것의 실체를 파악하고 가치를 찾고자 하는 작가의 진중한 태도를 공유할 수 있다.

백정기 ‘악해독단’ /사진제공=삼성문화재단백정기 ‘악해독단’ /사진제공=삼성문화재단


백정기 작가는 사라진 줄 알았던 조선의 기우제 제단 ‘악해독단’이 용산 미군기지 내 바베큐그릴 받침으로 쓰이고 있던 것에 착안해 거대한 벽돌 기념비를 제작했다. 작가는 “악해독단을 덮어버린 붉은 벽돌의 바베큐그릴을 우리가 허물어야 할 거대한 벽이자, 기억해야 할 치욕의 기념비로 인식했다”고 말했다. 그는 분열된 우리 사회를 메마른 대지로 상정해 이를 해소할 비(雨)를 바라는 기우제 프로젝트를 줄곧 진행해 왔다.


제인 진 카이젠은 무고한 제주민을 학살한 ‘4·3사건’을 영상작품으로 다뤘다.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는 무속인의 읊조림,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자 애쓰는 활동가들의 모습은 현실임에도 마치 영화처럼 펼쳐진다. 제주에서 태어나 덴마크로 입양돼 성장한 작가의 개인적 배경까지 어우러져 수십 년 억눌렸던 기억과 트라우마가 역사적 순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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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진 카이젠 ‘거듭되는 항거’ /사진제공=삼성문화재단제인 진 카이젠 ‘거듭되는 항거’ /사진제공=삼성문화재단


실험적인 설치미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호인은 자신의 두발로 누비고 다닌 우리나라 곳곳의 풍경을 그렸다. 인공의 흔적이 묘하게 가미된 자연풍경은 아름답지만 불안하다. “이상할 것 없는 풍경이라서 ‘이상한’ 풍경”이라는 익숙한 도심의 장면은 지치고 비루한 일상이 매몰 된 공간이라 불편하다. 그림 안에 ‘나’ 자신을 세워놓고 보면 서글퍼질 지경이다. 군복무를 소재로 한 박경근, 우주 탐사에 대한 경쟁을 다룬 박민하, 산업화 시기 한국의 민족주의를 주목한 안동일, 전통 회화의 현대적 역할을 조명한 최해리를 비롯해 예술가의 존재를 고민한 옥인콜렉티브 등 총 10팀이 참여해 8월7일까지 전시한다.(02)2014-6901

이호인 ‘다리를 건너는 자들’ /사진제공=삼성문화재단이호인 ‘다리를 건너는 자들’ /사진제공=삼성문화재단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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