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영웅과 거리 먼 인간 홈즈의 '민낯'

영화 '미스터 홈즈' 쇠약한 노년의 모습 담아



백 년도 전에 나온 소설 속 주인공 ‘셜록 홈즈’가 현대에도 변함없는 인기를 끄는 것은 보기 드문 캐릭터성 때문일 것이다. 한눈에 상대가 어떤 인물인지 파악하는 뛰어난 관찰력과 추리력, 경계를 모르는 해박한 지식, 기민하고 민첩한 육체적 능력까지 갖춘 사상 최고의 명탐정. 괴팍하고 오만한 성격조차 매력적인 이 가상의 인물은 헌신적인 파트너 존 왓슨, 다정다감한 허드슨 부인, 강직한 형사 레스트레이드 등과 함께 수수께끼 같은 사건을 차례차례 해결해가면서 탐정계의 신화가 됐다.

하지만 새 영화 ‘미스터 홈즈’에서 우리가 만날 셜록 홈즈(이안 맥켈런)는 이런 영웅적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93세의 홈즈는 세월을 이기지 못한 채 속절없이 늙어버렸다. 지팡이에 의지해 걸어야 할 정도로 쇠약해졌고 퇴행성 건망증이 진행돼 명민한 추리를 방해한다. 왓슨도 허드슨 부인도 없이 홀로 남은 홈즈는 지극히 쓸쓸한 기운마저 풍긴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영화 ‘셜록홈즈’의 주연 배우)와 베네딕트 컴버배치(영국 BBC 드라마 ‘셜록’의 주연 배우)에 익숙해진 관객들이 과연 이 홈즈를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영화는 크게 세 가지 이야기가 서로 얽히며 흘러간다. 활기 넘치는 런던 베이커 가를 떠나 서섹스 시골 마을에 정착, 양봉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내는 홈즈의 일상을 보여주는 가운데 그가 직접 집필하고 있는 30년 전 마지막 사건이 홈즈의 오래되고 흐릿한 기억을 통해 끼어든다. 두 아이를 잃은 앤 켈못 부인이 슬픔을 달래려 글라스 하모니카 레슨을 받았는데, 이후로 점점 더 이상해지는 것 같다는 의뢰를 받아 그녀를 추적했던 사건이지만 대체 어떻게 해결했는지 홈즈는 기억해내질 못한다. 심지어 이 사건은 홈즈가 사설탐정을 그만두게 된 계기가 됐는데도 말이다. 홈즈는 기억력 회복에 도움을 준다는 약초를 찾아 일본 히로시마까지 가는데, 현지 동행자와도 과거 기억과 관련된 사건이 얽혀있는 듯 하다. 하지만 이 또한 그에게는 전혀 없는 기억. 노년의 명탐정이 해결해야 할 사건이란 바로 이처럼 사라져가는 기억 그 자체인 셈이다.


200편이 넘게 제작됐다는 ‘셜록 홈즈’ 영화 가운데 이 작품의 남다른 점은 가장 인간다운 홈즈를 그리고 있다는 점. 자신만만함이 지나쳐 오만하기까지 하던 명탐정은 흐르는 세월과 함께 약해졌지만, 그래서 오히려 약하디약한 인간의 본질을 깨달은 듯 보인다. 사람의 감정보다 어려운 문제풀이에만 몰두했던 지난날을 조금 후회하는 듯한 노년의 셜록 홈즈란 팬들이 상상할 수 있는 이상적인 마지막이지 않을까. 반대로 초인적 면모의 명탐정을 사랑했던 기존 팬들이라면 왓슨도 없이 외롭게 남은 이 노인을 외면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지만 영웅의 초라한 모습을 보는 것은 반갑지 않은 법이니깐. 결국 당신이 이 영화를 좋아하게 된다면 그건 셜록 홈즈의 팬이라서이고 싫어하게 된다면 그 또한 셜록 홈즈의 팬이기 때문일 것 같다. 2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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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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