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오바마, 히로시마 방문으로 대중 봉쇄 정점 찍는다

지난 22일 베트남을 시작으로 역사적인 아시아 순방길에 오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5일 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대중 봉쇄전략을 논의했다. 오키나와현에서 발생한 미 군무원의 일본인 20대 여성 살해사건으로 일본 내 여론이 심상찮은 조짐을 보이자 당초 주요7개국(G7) 정상회의 개막일인 26일로 예정됐던 회담을 하루 앞당겨 중국에 시위라도 하듯 굳건한 미일 안보동맹을 과시한 것이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정상회의가 끝나는 오는 27일 오후 아베 총리와 함께 원폭 투하 71년 만에 미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히로시마를 찾아 ‘아시아 중심축(Pivot to Asia)’ 정책의 화룡점정을 찍는다. 국제사회의 관심이 온통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메시지’에 쏠리면서 글로벌 경제 해법 모색이라는 이번 G7 정상회의의 목적도 뒷전으로 밀려나는 모양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전용기 편으로 G7 정상회의가 열리는 미에현 이세시마에 도착해 곧바로 아베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교도통신은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을 통해 미일 간 유대를 보여주려는 시나리오가 오키나와 살해사건으로 차질이 생길까 우려해 회담을 하루라도 일찍 열어 사태를 조기 수습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환구시보 등 중국 언론들은 “미군의 살인사건이 오키나와 주둔 미군기지 철수 등을 요구하는 일본 내 반미 여론을 더 강경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중국은 24일 오바마 대통령이 1984년 이후 적용해온 베트남에 대한 무기 금수조치를 해제한 데 대해서도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미국이 과거 전쟁을 치른 베트남과 일본을 동맹군으로 끌어들이며 중국 견제를 노골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미일 정상은 회담을 하루 앞당겨 밤에 개최하는 이벤트를 통해 중국 측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재팬타임스에 따르면 양국 정상은 중국이 남중국해 인공섬의 군사기지화를 추진하는 데 대해 강한 반대를 표명하고 북핵 문제도 함께 논의했다.


대중 봉쇄전략의 하이라이트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원폭 투하지점 부근에 조성된 히로시마평화기념공원 내 위령비에 헌화한 뒤 ‘핵무기 없는 세상’을 주제로 연설할 예정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원폭 투하에 대한 사죄는 아니다”라고 못 박았지만 일본은 방문 자체를 사과로 해석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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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은 일본인 원폭 피해자와 일본군 포로 출신 미국인의 화해를 모색하는 자리도 조율 중이다. 미국이 중국의 패권 확장 저지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일본의 침략전쟁에 상당 부분 면죄부를 준 셈이다. 한국·중국 등에 엄청난 재난을 초래했던 일본이 느닷없이 ‘피해자’ 흉내를 내면서 아베 정권의 군사 대국화 행보도 더 탄력을 받을 것으로 우려된다.

G7 정상들도 미국·일본의 입김을 반영, 중국을 겨냥해 남중국해의 군사 거점화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채택할 것으로 알려졌다. 응우옌쑤언푹 베트남 총리도 G7 정상회의에 참석해 아베 총리와 회담을 갖고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사태 해결 등 양국 간 협력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처럼 미국의 봉쇄망이 서서히 구체화하면서 ‘대국굴기’를 내세운 중국의 시진핑 정권이 강력 반발하고 지정학적 긴장도 고조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중국이 북한의 전략적 가치에 주목해 대북 제재에 소극적인 자세로 돌아설지에도 귀추가 주목된다.

G7 정상들은 이번에 수니파 극단주의 단체인 이슬람국가(IS) 등에 대한 테러 대처, 유럽 난민 위기, 사이버안보 등도 논의할 예정이다. 반면 글로벌 경제 부양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날 가능성이 높다. 각국이 처한 경제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베 정권은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해 엔화 약세 정책에 대해 국제적 용인을 받을 계획이지만 이미 미국은 물론 프랑스 등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 최근 G7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회의에서 미국과 일본이 제안한 재정 확대 방안에 대해서도 독일이 “구조개혁이 더 중요하다”며 반대하는 바람에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뉴욕=최형욱기자 choihuk@sedaily.com

최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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