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라이프

[관광-대구 비슬산] 초록 품은 능선…역사 품은 고찰

산허리 휘감은 암괴 따라 한시간반 비탈길 오르면

일연이 삼국유사 구상한 '바위병풍 속 사찰' 대견사

4월말~5월초엔 대웅전 뒤편 흐드러진 진달래 장관

대견사 대웅전 뒤편의 진달래 군락지. 5월 말이라 이미 시들어버린 초췌한 꽃들만 얼기설기 모여 있고 제철 만난 초록이 기세를 올리고 있다.대견사 대웅전 뒤편의 진달래 군락지. 5월 말이라 이미 시들어버린 초췌한 꽃들만 얼기설기 모여 있고 제철 만난 초록이 기세를 올리고 있다.


“이번 대구 여행길에는 어떻게든 비슬산에 올라보겠노라”고 작심하고 떠나왔다. 지난번 취재 때 대구의 주산 팔공산을 이미 섭렵했기 때문이다. 그 가을, 동화사를 찾았을 때 붉게 타오르던 홍단풍은 아직도 뇌리에 또렷이 각인돼 있는데 지금 비슬산은 신록에서 초록으로 옮겨가는 와중이었다. 정오를 넘어 대구에 도착해 이미 옻골마을을 둘러본 터라 시간은 어느덧 5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이런저런 상황을 핑계 삼아 우리는 길이 닦인 대견사까지 전기로 가는 셔틀버스를 이용해 편안한 산행(?)을 시작했다.

해발 1,083.6m의 비슬산. 차량 산행을 할 수 있는 출발점은 유가면 휴양림길 230에 있는 자연휴양림 입구다. 이곳부터 대견사까지는 차량으로 오를 수 있는 도로가 나 있기 때문이다. 이 길은 4륜구동차도 아닌 전기차가 오를 수 있을 정도로 잘 닦여 있어 대견사까지의 산행은 차를 타지 않고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 반이면 충분하다.


우리가 대구를 찾은 날 올 들어 처음으로 서울에 폭염주의보가 발령됐다. 비슬산으로 들어오니 나무 그늘이 해를 막아 그나마 참을 만했다. 그래도 잠깐을 걸었을 뿐인데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휴양림 입구 쪽에서 오르는 길에는 산기슭 왼쪽으로 바윗덩어리들이 쏟아져내리며 형성된 ‘암괴’가 있다. 이곳의 암괴는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인데 대견사에 올라 삼층석탑 앞에서 내려다보면 발아래에서 산허리를 향해 흘러내리듯 퍼져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전기차의 종착지인 대견사는 신라 헌덕왕 때 창건됐고 일연이 삼국유사를 구상했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곳은 풍수지리상 길지라고 하는데 조선의 기운을 북돋운다는 이유로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사되기도 했다. 하지만 폐사된 지 100년 만인 지난 2014년 민족정기 수복 차원에서 다시 복원됐다.


대견사에 도착해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났더니 해가 산너머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고도가 높은 탓인지 붉은 낙조 대신 눈부신 햇살이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아무리 궁리를 해도 석양 구경은 물 건너간 듯싶었다. 우리는 태양이 더욱 남쪽으로 떨어질 가을을 기약하며 올라왔던 산길을 따라 하산의 발길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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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의 노출을 거부한 비슬산 이름의 유래와 관련해서는 세 가지 설이 있다. 우선 신증동국여지승람·달성군지에 따르면 비슬산은 원래 ‘포산(苞山)’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기록돼 있다. 포산은 수목에 덮여 있는 산이라는 뜻으로 우리나라에 온 인도의 스님이 이를 ‘비슬’이라 발음해 굳어졌다는 설이다.

또 다른 설은 세상이 물바다가 됐을 때 물에 잠기지 않은 비슬산의 몇 봉우리에 배를 맸다는 ‘배 바위 전설’이다. 배를 맸던 그 바위의 모습이 비둘기를 닮아서 ‘비들산’이라 부르다가 ‘비슬산’으로 굳어졌다는 사연이다. 마지막으로 비슬산의 건너편 자락에 있는 절인 ‘유가사 사적’에는 거문고를 닮아 ‘비슬산’이라 불렸다는 기록도 남겨져 있다.

이름의 유래야 어찌 됐든 대견사에 당도한 일행은 삼층석탑 허리에 뉘엿뉘엿 떨어지기 시작하는 해를 걸어놓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휴양림 근처의 육산(肉山)에서 시작한 비슬산은 중턱의 암괴를 거쳐 대견사 초입부터 바위로 이뤄진 골산(骨山)으로 끝을 맺는데 대웅전 뒤로 난 계단을 넘어가면 산은 다시 육산으로 자태를 바꾸며 진달래 군락을 뒤집어쓰고 있다.

하지만 시절은 이미 5월 말이라 진달래 군락지에는 이미 시들어버린 초췌한 꽃들만 얼기설기 모여 있고 제철 만난 초록이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비슬산의 진달래 군락을 보려면 참꽃축제가 열리는 4월 말~5월 초에 이곳을 찾으면 되는데 올해도 예외 없이 때맞춰 연분홍 향연이 펼쳐졌다.

비슬산을 오르는 코스로는 휴양림 북쪽의 유가사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방법도 있다. 유가사~수도암~도통바위~비슬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경로다. 유가사는 신라 흥덕왕 2년(827)에 도성국사가 창건한 절로 진성여왕 3년에 탄잠선사가 중창했고 고려 문종 1년에 학변선사가, 조선 문종 2년 일행선사가 중수했다고 전해온다.

지금은 크지 않은 절이지만 유가사는 한때 암자 99개, 승려 3,000명, 전답 1,000마지기에 이르는 큰 절이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후 보수와 중수를 거듭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글·사진(대구)=우현석객원기자

비슬산 너머로 해가 떨어지기 직전 노을 대신 땅거미가 산을 덮기 시작했다.비슬산 너머로 해가 떨어지기 직전 노을 대신 땅거미가 산을 덮기 시작했다.


대견사 3층석탑은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높이 3.67m이며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2호로 지정돼 있다.대견사 3층석탑은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높이 3.67m이며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2호로 지정돼 있다.


최수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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