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개헌론 바람이 다시 솔솔 불고 있다. 지난 2014년 10월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가 4년 중임제 개헌을 꺼냈다가 청와대 반발로 접은 지 1년반 만이다.
원희룡 제주 지사는 31일 “정치권의 연대명분이 될 수있다”며 개헌카드를 꺼냈다. 원 지사는 새누리당의 잠재적 대권 주자 중 한 명이어서 그의 개헌발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됐다. 원 지사는 이날 한 라디오방송에서 “(대선) 공약 또는 정치권끼리 서로 연대하는 데 있어 명분은 개헌이 될 것”이라며 “나는 개헌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원 지사는 이어 “(개헌이 대선) 공약으로 채택될 가능성도 매우 높다”고 덧붙였다. 대통령 5년 단임제로는 장기적인 국가발전 전략을 세우는 데 한계가 있고, 대통령이 제왕적인 권력을 갖다 보니 국회는 물론 여론 등을 무시한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다.
앞서 정의화 전 의장도 지난 달 26일 자신의 싱크탱크인 ‘새한국의비전’을 창립하면서 개헌 필요성을 꺼냈다. 이 때문에 싱크탱크가 개헌논의를 촉발할 매개역할을 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등 3당 체제 중심으로 공고하게 짜여진 대선판을 후발주자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을 벌이기 위해 개헌을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후발주자인 원 지사나 정의화 전 국회의장, 손학규 더민주 전 상임고문 등을 중심으로 개헌 발언이 계속 나오고 있는 이유다.
여기에 야당내 호남세력이나 여당내 친박 등은 자기계파만으로 독자적 집권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연대의 수단으로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 등의 개헌을 선호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서양호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은 “후발 군소 대선주자는 물론 세력은 있으나 대선주자가 마땅치 않은 지역 계파세력이 개헌으로 지분을 넓히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종의 판 흔들리라는 설명이다.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도 “후발 주자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을 확보하기 위해 개헌을 꺼내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개헌 논의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태풍이 될 지, 미풍이 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여권의 한 3선 의원은 “의원들이 겉으로는 개헌을 이야기 하지 않지만, 속내는 그동안 지켜봐 온 5년 단임제의 제왕적 대통령제보다는 대통령 중임제나 이원집정부제와 같은 개헌논의가 필요하든 데는 공감하고 있다”며 “내년에 나올 대선주자들이 개헌을 공약으로 내거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개헌을 공약으로 내걸고 국민들의 뜻을 묻겠다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내년 대선이 개헌 찬반을 묻는 선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반면 개헌논의를 위해서는 정치권이나 시민들의 합의가 어느 정도 선행돼야 하는데, 아직은 그런 수준이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김수진 이화여대 정외과 교수는 “개헌논의는 대선정국에서 등장하기 마련이지만, 정치권이나 시민들의 합의수준이 굉장히 낮은 편”이라며 논의가 이뤄져도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훈 중앙대 정외과 교수는 사견을 전제로 “개헌논의는 대선주자들이 언급하기 보다 의회가 주도하는 게 맞다고 본다”며 “내년 대선을 목표로 하는 것보다 최소 8년이나 그 이상의 시간을 갖고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각 정당의 정략적인 이해관계를 벗어나서 큰 틀에서 논의를 진행해야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개헌을 할 수 있다는 취지다. 장 교수는“20대 국회가 시작됐기 때문에 대선 주자급이 아닌 국회가 개헌논의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