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시련의 탄산음료


어린 시절 소풍 가기 전날 밤에는 언제나 배낭 속 내용물을 확인한 후 잠자리에 들었다. 어머니가 뭘 넣어 주셨는지, 필요한 것을 잊지는 않으셨는지 궁금증이 일었기 때문이다. 특히 김밥·삶은 계란과 더불어 콜라·사이다는 반드시 챙겨야 할 필수품. 요즘에는 냉장고를 열기만 하면 손에 잡히는 게 탄산음료지만 당시만 해도 특별한 날이 아니면 만나기 힘든 귀한 존재였다. 특히 시원한 그늘에 앉아 김밥과 삶은 계란을 먹은 뒤 오는 퍽퍽함을 탄산음료의 톡 쏘는 맛으로 뻥하고 뚫어버릴 때의 그 시원함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꾸기 힘든 쾌감이었다.

최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면서 그 귀했던 탄산음료가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항상 따라붙는 게 비만의 주범, 국민건강을 해치는 원흉이라는 오명이다. 200㎖짜리 콜라 한 캔에 각설탕 8개에 해당하는 25g의 설탕이 들어가니 그럴 만도 하다. 시련도 많았다. 미국 뉴욕시는 주민들의 건강을 지키겠다며 2012년 16온스 이상 대형 용기의 탄산음료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발표했고 덴마크와 멕시코는 각각 2011년과 2013년 탄산음료에 세금을 부과하는 이른바 '소다세'를 도입하기도 했다. 비록 뉴욕시가 추진하던 조치는 시행 직전 대법원으로부터 위법 판결을 받아 중단됐고 덴마크도 소다세 도입 2년 만에 '없던 일'로 되돌려 놓았지만 아직도 많은 나라에서는 판매 금지나 세금 도입을 둘러싼 논쟁이 그치지 않고 있다.

서울시가 시민 건강을 위해 다음달부터 시내 공공기관 청사와 지하철 역사에 설치된 자판기에서 탄산음료 판매를 금지하기로 했다. 국내 지방자치단체 중에서는 처음이라고 한다. 비만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개인의 선택권을 과도하게 침해한 것 아니냐, 편의점에서의 판매는 허용해 실효성이 없다는 등의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공공안전이 먼저냐 프라이버시 존중이냐의 오랜 논쟁이 재연될지도 모르겠다.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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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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