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조피디의 Cinessay] '첨밀밀'

인연의 고통과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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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연은 한 편의 드라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의 인연은 단 한 조각의 어긋남만 있어도 완성되지 못하는 퍼즐과도 같다. 어떻게 우리가 만났을까, 따져볼수록 신기하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어지거나 어긋나는 사랑 때문에 오늘도 누군가는 울고 웃는다. 전쟁 중에도 사랑은 피어나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는 그 많은 신화와 실화를 통해 밝혀진 바로는 사랑만큼 고난도의 인연은 없다는 거다. 그 이유는 사랑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사랑하기 딱 좋은 상황과 시기에 사랑이 찾아오면 얼마나 좋을까. '첨밀밀'(1996년작)의 여소군(여명)과 이요(장만옥)도 맺어지기 힘든 상황에서 사랑을 느낀 죄로 인생이 휘청거리며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고통을 겪는다.

상해 토박이 여소군과 이요는 중국 대륙인들에겐 기회의 땅인 홍콩에서 우연히 만난다. 두 사람은 많이 다르다. 순수하고 소박한 여소군과 달리 이요는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맺고 끊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바로 그 '다름'이 '끌림'이 된다. 외로운 타지, 홍콩에서 두 사람은 알게모르게 의지하게 되고 함께 좋아하는 가수 등려군의 카세트 테입을 팔던 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하지만, 여소군에게는 약혼녀가 있다는 걸 아는 이요는 그저 "따뜻한 밥 한그릇 함께 먹은 것"이라며 사랑의 감정을 폄하해버린다. 이루지 못할 사랑에 대한 자기방어지만 어디 사랑이 그렇게 맘대로 되는가. 우여곡절 끝에 여소군은 고향에서 자신을 기다려준 약혼녀 소정과 결혼을 하고 경제적으로 힘들어진 이요 역시 자신을 아껴주던 조폭, 표와 연인사이가 된다. 겉으로는 이렇게 두 사람의 감정이 현실에 묻혀버리는 것 같지만, 소군과 이요는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는 것을 느낀다. 이런 감정의 혼란 속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낀 소군은 아내에게 고백을 하고 이요와 함께 떠나기로 하지만, 뜻밖에도 이요는 신변이 위태로워진 표를 따라 홍콩을 떠나버린다. 아내와 헤어진 소군 역시 뉴욕으로 떠난다. 이렇게 두 사람은 간신히 이어질뻔했던 끈을 두 번째로 끊어버리고 완전히 다른 길을 가는 듯 보인다. 하지만, 미국에서 표가 거리의 불량배들에게 살해 당하고 다시 이요는 혼자가 된다. 그리고 또 몇 년이 흘러, 각자의 삶을 살고 있던 두 사람은 가수 등려군의 사망소식을 알리는 전자대리점 텔레비전 앞에서 소설처럼 재회한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요와 소군의 오랜 사랑의 이야기지만, 보면볼수록 다른 인연도 애틋하게 다가온다. 비록 헤어지지만 소군과 소정의 사랑도 진실했을거다. 소군을 사랑하면서도 어려움에 처한 표를 따라나서는 이요의 선택도 자신을 넉넉하게 품어준 표에 대한 의리일 수도 있지만, 그것 역시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다. 인생의 가을 즈음에 이 영화를 다시 보니 현실이라면 소군과 이요가 얼마나 비난받고 힘들까, 한숨이 절로 난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맘편히 사랑할수 있는 상황에서 만나는 건 대단한 축복이다. 사랑이 주는 설렘은 너무 짧고 그 인연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엄청난 고통과 책임감이 필요함을 알아버린 재미없는 나이가 되었지만, 영화에 잔잔히 울리는 등려군의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달빛이 내마음을 전하네)'은 여전히 정말 좋다. 특히 살짝 찬기운이 도는 이 계절에는….

조휴정 PD(KBS1라디오 '빅데이터로 보는 세상'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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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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