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베카계곡 공중전





1982년 6월9일, 레바논 북동부 베카계곡 상공. 수십 대씩 편대를 이룬 시리아와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맞붙었다. 사흘간 이어진 공중전의 결과는 놀라웠다. 86대1로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승리. 이스라엘이 상실한 정찰형 RF-4E 팬텀 전폭기 한 대도 공중전이 아니라 지상의 대공사격으로 떨어졌다. 각국의 공군 관계자들은 경악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시리아군 조종사는 장님이었다는 말인가.’


이스라엘이 전대미문의 공중전 기록을 남길 수 있었던 비결은 크게 세 가지. 무엇보다 이중 삼중의 강력한 대공 화망(火網)을 자랑하는 시리아군 지역 상공에서 싸우면서도 이렇다 할 대공 미사일 사격을 거의 받지 않았다. 개전초 무인기를 활용해 레이더 및 미사일 기지를 파괴한 덕분이다. 이스라엘군은 가장 먼저 RPV(Remote Piloted Vehicle·무인기)를 시리아군의 대공 진지(SAM 사이트) 쪽으로 날렸다.

시리아군의 대공 레이더가 작동하는 순간, 이스라엘군은 주파수와 위치를 알아채고 근처의 자주포대에 포격을 지시하는 한편 홍해상에서 대기하던 공군 전투기 편대를 보냈다. 이스라엘 공군 공격 제 1파의 미국제 F-4E, F-16A/B, F-15A/B 전투기와 국산 크피르 전투기는 시리아군의 레이더를 향해 AGM-45 슈라이크 및 AGM-78 미사일부터 쏘았다. 레이더 발신 신호를 쫓아가는 이들 미사일은 정확하게 목표를 때렸다.

모두 96대로 구성된 이스라엘 공군의 공격 제 1파가 작전을 개시한 시각이 이날 오후 1시30분. 승부는 사실상 이로써 결정 났다. 레이더와 대공미사일을 동시에 운용하는 기지 19개 가운데 17개가 파괴됐으니까. 오후 3시 50분께 92대로 편성된 공격 제 2파와 이튿날 제 3파는 남은 레이더 기지 두 곳 마저 파괴했다. 시리아군은 개전 첫날 주력인 SA-6 대공미사일을 57발이나 발사했으나 모두 빗나갔다. 레이더로 추적하는 대신 육안으로 발사했으니 명중률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둘째는 공중경보기(AWACS)의 존재. 미국제 E-2C공중경보기는 반경 400㎞의 비행체 130개를 추적 감시하며 전투기 편대에 적의 접근을 미리 알려줬다. 시리아 공군 조종사들은 지상 관제 마저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다. 시리아 조종사들은 사실상 장님 상태에서 싸운 셈이다. 이스라엘에는 다른 비밀 병기도 있었다. 보잉 707 여객기를 개조한 전자전(ECM) 전용기도 방해전파를 날리며 전투기 세력의 제공권 장악을 거들었다.

압도적 승리를 거둔 세 번째 요인은 장비의 차이. 이스라엘은 미국제 최신 기종인 F-15, F-16 전투기에 프랑스의 미라주 5를 불법 복제한 자국산 크피르 전투기로 무장했다. 크피르 전투기는 미국제 엔진을 달아 ‘사상 최강의 미라주 전투기’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우수한 기종이었다. 미국제 F-4 팬텀기도 대지 공격용으로 일선을 지켰다.* 반면 시리아는 소련제 미그 23, 25 전투기 같은 최신예기를 보유했다고 큰소리쳤지만 성능이 한참 떨어지는 미그 21이 주력이었다.

주 무장의 차이는 더욱 컸다. 이스라엘 공군은 사이드와인더 대공미사일 중에서도 최신 버전 AIM-9L형으로 무장해 어떤 방향에서든 공격이 가능했다.** 반면 시리아 공군에는 이 같은 성능을 지닌 공대공 미사일이 아예 없었다. 이스라엘 공군은 AIM-7 스패로우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도 운용해 시리아 전투기들은 영문도 모르고 당하는 경우까지 일어났다. F-15, F-16전투기에 달린 20㎜기관포는 컴퓨터로 연동돼 정확도를 자랑했다.


승부를 가른 진짜 요인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다. 사람에 대한 교육과 평가, 활용도 차이가 컸다. 우선 이스라엘 공군 조종사의 훈련 비행 시간과 실전 경험이 시리아 공군보다 훨씬 많았다. 위기 상황에서 이스라엘 조종사는 마치 권투선수가 잽을 날리듯 미사일을 쏘아댔으나 시리아군 조종사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고가의 미사일을 발사해 명중하지 못한 책임을 조종사에게 물었던 탓이다. 가뜩이나 기량이 모자란 조종사들은 결정적인 한방을 때릴 수 있는 순간이 오기를 기다리다 먼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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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강렬한 인상을 줬기 때문인지 베카계곡 공중전은 여러 가지 평가를 받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공중전’, ‘역사상 가장 일방적인 공중전’, ‘베카 계곡 공중전’이 아니라 ‘베카 계곡 칠면조 사냥’, ‘서방제 무기 시스템의 소련제 시스템에 대한 종합적 우위를 확인한 전투’로 불리는 베카계곡 공중전은 우리에게 몇 가지 숙제와 질문을 동시에 던진다.

무엇보다 주목할 대목은 돈과 기술력. 전 세계 유대인들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이스라엘의 자국산 무인기 개발과 공중조기경보기 및 최신예기 구입이 가능했을까. 요즘 이스라엘 공군은 베카 계곡 공중전 당시보다 강력하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완성기체 제작을 포기하고 주요 부품과 무장 개발에 뛰어든 결과 항전 장비와 각종 미사일에서 미국제를 능가하는 초고성능을 자랑한다.

이스라엘과 비교한 우리 자금력과 기술력의 현주소는 어디일까. ‘더 낫다’고 쉽게 대답할 수 있나. 사람에 대한 평가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 공군 조종사들은 값비싼 미사일을 쏘아 맞추지 못할 경우 경위서를 작성했던 시리아 공군 조종사들과 처지가 얼마나 다를까. 궁금하다. 한국군은 이스라엘에 가까운지, 아니면 패전한 쪽과 유사한지.

보다 본질적인 질문도 있다. 이스라엘이 승리는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인가. 이스라엘군의 효용성은 가히 세계 최강이나 앞으로 펼쳐질 모든 전쟁에서 다 승리할 수 있을까. 100번 싸워 단 한번이라도 진다면? 결과를 가늠하기도 오싹하다.*** 지구촌의 평화는 여전히 위험하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 이스라엘 공군이 1982년 베카계곡 공중전을 벌일 때도 노후기로 취급했던 F-4 팬텀 전투기가 그로부터 32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도 한국에서는 여전히 현역이다. 아직도 팬텀 전투기를 운영하는 나라는 이집트와 이란, 그리스, 터키와 한국 공군 정도이나 모두 개량형이고 원형을 그대로 마르고 닳도록 쓰는 나라는 한국 뿐이다.

** 이스라엘이 사용한 사이드와인더는 이전 형과는 성능이 크게 달랐다. 월남전에서 이 미사일은 명중률이 10~19%에 머물렀지만 이스라엘이 새로 도입한 AIM-9L은 베카계곡 공중전에서 93%의 명중률을 보였다. 한국 공군은 F-15K에만 최신형인 AIM-9X이 달려 있을 뿐 베카계곡 공중전에서 쓰던 사이드와인더보다 더 구식인 P형을 아직 운용하고 있다.

*** 너무 완벽하게 아랍 게릴라들의 로켓탄 공격을 막아내기에 도리어 비인도적이라고 비난 받았던 ‘아이언돔의 역설’이 성립할 정도로 이스라엘의 군사과학기술은 뛰어나다. 최근 이스라엘을 방문했던 한 고위장성은 ‘이스라엘의 우위는 영원할 것 같다’고 장담했으나 과연 그럴지 의문이다. 이스라엘의 유대인과 아랍인의 인구 비율이 지금 수준을 유지한다면 이스라엘 국가의 지속성 여부는 불투명하다. 만의 하나, 즉 지금처럼 원한이 깊은 가운데 만 번 싸워 단 한 번이라도 진다면 이스라엘의 유대민족은 절멸의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경제개발을 통한 상호 공존의 길은 정녕 없는 것일까.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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