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권홍우칼럼]섬마을 성폭행사건의 공범이 그들 뿐이랴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남성에는 관대, 여성에게만 가혹

섬마을 성폭행은 한국사회 축소판

엄벌 내려야 범죄 재발 방지 가능

선생님의 용기, 변화로 이어져야

완벽한 초동수사 경찰에도 박수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끔찍한 집단 성폭행이 일어난 섬마을. 여교사가 사건 직후 신고하지 않았다고 가정하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피해자만 빼고 대부분은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지냈으리라. 비슷한 사건이 반복해서 발생했을 것이고…. 성폭행 범인들을 두둔하는 듯한 일부 주민이 바라는 결과가 이런 것인가.


성범죄에 눈감고 넘어갈 경우의 부작용은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사회상이 섬마을의 확대판이니…. 일부의 잘못을 전체에 뒤집어씌우는 일반화의 오류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있다면 되묻고 싶다. 누이와 딸들이 안심할 만한 세상이냐고. 오지에 근무하는 여성들만 불안한 게 아니다. 강남역 같은 시내 한복판에서 영문도 모르고 죽임당하는 현실 앞에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기 그지없다.

처음부터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 법과 관습부터 문제다. ‘법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만 보호한다’라는 말이 크게 회자된 적이 있다. 1955년 ‘한국판 카사노바’에 대한 재판에서 나온 말이다. 명판결이라고 두고두고 칭송받았으나 근본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많은 판결이다. 만인에게 공평하다는 법이 조건부로 적용되는 게 과연 온당한가. ‘보호할 가치’ 여부는 누가 판단하는가. 일방적으로 강요된 가치관은 ‘남성의 폭력에는 관대하고 여성의 피해에는 무관심한 사회적 인식’이라는 찌꺼기를 남겼다.

고약한 찌꺼기가 또 있다. 일제 강점기, 일본 군인들에 의해 퍼졌다는 ‘허리 아래 일은 논하지 말라’는 억지가 바로 그것이다. 힘 있는 자일수록 축첩하고 방탕하게 살면서도 죄책감을 갖지 않았다. 권력형 성 문란과 방탕의 사례는 무수히 많다. 딸보다 어린 나이의 연예인 지망생을 끼고 술을 마시다 부하의 총에 맞아 죽은 대통령에서 여기자마저 성희롱 대상으로 삼은 국회의원까지. 최근에는 성추행사건으로 취임 초기 대통령 얼굴에 먹칠한 전 청와대 대변인이 아꼈던 말을 쏟아냈다. 억울하단다.


물론 윗물이 흐려도 아래 물이 맑을 수 있다. 혼탁한 물이 자갈과 모래를 지나며 스스로 정화되는 경우도 많으니까. 자갈과 모래의 기능을 맡아야 할 대학 교수며 부장 판사, 경찰과 언론인이 성범죄에 가담한 사례 역시 하나둘이 아니다. 청소년의 성범죄는 어른을 뺨친다. 위부터 아래까지 온통 혼탁한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 바로 천인공노할 여교사 윤간 사건이 일어난 섬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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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고 답답한 가운데에서도 두 줄기 빛을 봤다. 첫째는 피해를 입은 선생님. 영화에서 본 것처럼 끔찍한 일을 당하면 피가 나도록 몸을 씻는 경우가 많은데 여교사는 범죄의 온갖 증거를 그대로 보존했다. 수치심에 무너지지 않은 젊은 여교사의 강인한 정신과 현명한 대처가 우리 사회를 정화시키는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마땅히 칭찬받아야 할 두 번째 대상은 현지 경찰이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의 초동조치는 완벽, 그 자체다. 현장의 옷과 이불을 수거하고 여교사를 파출소로 옮겨 보호했다. 섬에서 출항하는 첫 배에 여교사를 태운 것도 잘한 일이다. 목포경찰서도 신속하게 정밀조사를 펼쳤다. 수사 초기에 웃어가며 발뺌하던 범인들이 죄를 자백할 수밖에 없었던 데에도 물증을 확보한 경찰의 각별한 노고가 깔려 있다.

황망한 범죄로 공분에 떨었던 우리가 할 일은 세 가지다. 무엇보다 피해자인 선생님이 젊은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보이지 않게 도와야 한다. 성범죄를 고발한 여성들이 주변의 따돌림 같은 2차 피해를 입는 경우도 허다하지 않은가. 교육 당국의 적절한 배려가 있기 바란다. 사건을 맡았던 경찰들은 응당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반응을 보였다지만 그들에게도 박수를 보내자. 두 번째 할 일은 단죄다. 영혼을 파괴하는 범죄인 강간, 그것도 집단 강간은 중죄로 다스려야 한다. 솜방망이 처벌은 재범을 만든다.

세 번째는 사회 구성원 모두의 반성이다. 무의식중이라도 여성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위에서 아래까지 반성하고 고치자. 언제까지 이런 일을 반복해야 하는가. 입에 올리기도 민망한 사건을 접하고도 고치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없다.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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