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수요 산책] 연구개발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기초원천기술 수준 낮은 한국… 25년 만에 R&D 예산 제자리

권혁동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국회에 제출된 내년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이 18조9,363억원으로 사실상 동결됐다. 국가 R&D 예산의 투자가 정체된 것은 25년 만이다.

정부가 참 쉽지 않은 결정을 했다. IMF 경제위기 직후 어려운 경제 사정에도 연구개발비는 늘려 발전의 틀을 유지했다. 이제까지 어떤 어려움에도 R&D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밥 굶고 어려워도 자식 교육비를 대는 부모의 심정이었다.

내년 R&D 예산은 앞으로도 투자 기준이 돼 누적 기준 예산이 정체되는 효과를 낼 것이다. 예산은 특정 연도에 갑자기 많이 늘리거나 줄이지 못하는 관성 때문이다. 동결된 예산이 장래 R&D 투자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은 확실하다.

이달 초 노벨과학상 수상자 선정 소식에 또다시 여기저기서 개탄의 목소리가 나왔다. 일본·중국이 수상자를 배출했으며 앞으로 더 많은 노벨상을 수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초과학을 지속적으로 육성해온 결과다. 노벨상 수상을 위해서는 지식·기술의 오랜 축적과 숙성이 필요하다. 연구비의 안정적 지원은 필수적인 요소다.

정부는 창조경제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단기적 성과와 사업화를 위한 제품 개발이 목표다. 중장기적인 과학기술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명하다. 우리는 기초과학의 연구 성과 창출에 적합하지 못한 구조를 갖고 있다. 연구 프로그램에 투자하고 바로 성과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화끈하게 투자하고 숨넘어가게 결과를 요구한다. 거액의 연구비에는 행정을 위한 문서 작업과 집행을 위한 수많은 심사·감사가 필연적이다. 이러다 보니 연구 내용은 최소화시킨다. 그래서 적은 액수라도 오랫동안 투자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다. 연구자가 지적 호기심을 갖고 자율적으로 연구에만 집중할 때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지만 꿈같은 얘기다.

연구원이 공무원 만나는 시간이 길어지거나 연구비 집행에 서류가 많아지면 좋은 연구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연구 자체보다 연구비를 수주하고 집행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입해서는 곤란하다. 안정적인 연구 기반으로 좋은 성과를 내도록 정책과 예산의 배려가 필요하다. 대규모 연구단지 조성, 건물 신축, 고가 장비 도입 등으로 연구가 잘되는 것이 아니다. 유능한 연구원이 없으면 고가의 장비는 고물로 전락하고 연구단지는 황폐해진다. 연구개발은 사람이 한다.

우리 정부와 민간의 총 R&D 투자 비용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4.15%(2013년)로 세계 상위 수준으로 더 이상의 투자 증액이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절대액은 미국·일본·중국에 비해 현저히 적다. 국제 경쟁력은 총액투자와 결과로 이뤄진다. 단순 비율적 개념은 국가 미래의 지속 발전에 장애를 가져올 수 있다. 특히 우리와 비슷한 산업구조와 부존자원을 가진 일본은 지난 2006년 정부 R&D 투자 목표가 GDP 대비 1%였지만 투자 규모는 약 25조엔, 지난해는 18조6,000억엔이었다. 같은 해 우리는 18조9,000억원이었다.

우리는 선진국에 비해 기초 및 원천기술 수준이 높지 않다. 게다가 75% 정도의 연구개발비가 민간 부문에서 투자되고 있다. 대기업 주도의 R&D는 제품 개발에 치중돼 있다. 기초 원천기술 개발에 인색하다. 공공 부문의 지속적인 R&D 투자를 통해서만 미래 국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이 가능하다.

국제정세 변동과 안보 환경이 달라져 국산 무기체계 개발을 위해 적극적인 투자가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우리 산업이 고도화하면서 선진국으로 전환되는 구조를 갖고 있어 국가 R&D 투자 확대의 필요성은 어느 때보다 크다.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과학기술 예산 정체에 대한 문제를 지적한 것이 어느 정도 반영될지 궁금하다.

권혁동 서울과학기술대 글로벌융합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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