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일본 도쿄 남쪽 오다이바에 위치한 도요타의 자동차 복합문화시설 ‘메가웹 스테이션’에 마련된 주행트랙에 수소연료전지차(FCV) ‘미라이’가 들어섰다. 하이브리드차와 달리 엔진이 없는 미라이는 뒷좌석과 타이어쪽에 2개의 탱크에서 공급되는 수소와 주행 중 유입되는 산소의 화학 반응으로 발생하는 전기로 모터를 돌려 구동한다.
운전대에 앉아 액셀러레이터를 밟자 소리없이 미끄러지듯 출발했다. 미라이의 최고 속도는 시속 175㎞지만 주행트랙이 1.3㎞에 불과하고 곡선 구간이 많이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했지만 주행성능은 하이브리드차는 물론 가솔린·디젤차 못지 않았다. 특히 주행 후 운전대 왼쪽에 있는 ‘H2O’ 버튼을 누르자 차량 뒷쪽에 있는 배기구로 물이 배출됐다. 주행 중 이산화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대신 음용도 가능한 물을 배출하는 친환경 수소차의 장점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2014년 12월부터 미라이 판매를 시작한 도요타는 지난해 연 700대 정도인 생산능력을 올해 2,000대로 늘린데 이어 내년에는 3,000대 수준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2020년께 성능을 높이고 가격을 낮춘 후속모델 출시도 준비 중이다. 도요타 관계자는 “FCV는 수작업이 많아 생산규모를 단기간에 늘리기 힘들다”면서 “수소충전 인프라를 확충하면서 공급 체계를 정비해 서서히 생산능력을 증대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친환경차 개발·보급에 사활을 건 가운데 높은 효율성과 친환경성을 갖춘 FCV가 새로운 격전장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FCV 상용화에 일본 업체가 앞서가고 있는 가운데 한국을 비롯해 미국·독일도 가속도를 내고 있다
FCV는 장점이 많은 차다. 이론상 수소는 85%의 효율을 나타내 가솔린(27%)과 디젤(35%)을 앞선다. 연료 무게가 상대적으로 가벼워 대형 트럭에도 쉽게 적용할 수 있고 원료도 무한정이다. 배기가스 대신 물만 배출하기 때문에 친환경적이다. 충전이 빠른데다 주행거리도 전기차에 비해 길다. 미라이의 경우 3분만에 완충되고 650㎞를 주행할 수 있다.
FCV 시장은 일본차가 주도하고 있다. 도요타는 올 5월까지 890대의 미라이를 팔았다. 12일까지 열린 부산국제모터쇼에도 출품해 한국 시장에 첫 선을 보였다. 혼다는 지난 3월부터 ‘클라리티’ 수소차 버전의 리스를 시작했다. 올해 약 200대 리스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내년에 양산과 일반 판매를 시작한다. 벤츠와 공동으로 FCV를 개발 중인 닛산은 기존 모델 보다 연료전지 파워트레인 규모를 30% 수준으로 소형화해 내부공간을 넓힌 모델을 내년께 출시할 예정이다.
2013년 3월 세계 최초의 양산 FCV인 ‘투싼 ix’를 개발한 현대차는 2013년 76대를 판매한 데 이어 2014년 128대, 지난해 269대 등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4월까지 총 147대가 팔려 누적 판매량은 620대다.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수소관련 벤처기업을 육성하는 한편 복합충전시설을 설치하는 등 인프라 구축에도 적극적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출력 밀도 향상, 운전 조건 최적화, 전기차·하이브리드차와의 부품 공용화, 파워트레인 소형화 등에 연구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면서 “2018년 FCV 전용 모델을 출시하고 2020년까지 2종의 FCV 라인업을 갖출 계획”이라고 말했다.
1960년대부터 FCV 개발을 시작한 GM은 최근 픽업트럭인 ‘쉐보레 콜로라도’를 군용 FCV로 개조해 주행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수소차 대중화를 앞당기기 위해 ‘합종연횡’에도 적극적이다. 벤츠와 닛산에 이어 GM과 혼다도 2020년께 공동 개발한 FCV를 출시할 예정이며 도요타와 BMW도 FCV 개발에서 협력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FCV의 대중화 시점을 인프라 확충 및 가격 경쟁력 확보, 기술개선이 이뤄진 2025년께로 전망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0년 전세계 자동차 시장의 1.8%(240만대)를 FCV가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FCV 대중화를 위해서는 인프라 확충이 필수적이다. 올 6월 현재 미국의 수소 전문 충전소는 25곳에 불과하고 한국은 10곳에 그치고 있다. 일본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현재 77곳인 수소충전소를 2030년까지 900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차량 가격도 더 낮춰야 한다. 미라이의 경우 각종 세제 혜택을 받아 397만엔(약 4,000만원)에 구입할 수 있지만 메이커 희망 소망가격이 723만6,000엔이다. 투싼 ix는 지난 2월 1억5,000만원의 차량 가격을 절반 수준인 8,500만원으로 대폭 인하했지만 여전히 비싸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친환경차 시장 선점을 위해 전기차와 FCV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정부와 에너지 업체와의 협업이 강화되고 있는 만큼 우리 정부도 인프라 확충 등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도쿄·나고야=성행경기자 sain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