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여제’ 수식어가 당연해진 박인비(28·KB금융그룹)지만 전설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19세에 US 여자오픈을 우승하고 나서 3년간 슬럼프에 빠졌다. 세계 최고도 멀지 않았다는 생각과 달리 2승이 빨리 나오지 않자 조급해졌다. 박인비는 “대회장에 가려고 짐 싸는 것조차 싫었다. 골프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할까 하는 생각을 매 순간 했다”고 돌아봤다. 그래서 박인비에게는 메이저 3연승 대기록을 작성한 지난 2013년 만큼이나 슬럼프 탈출을 위해 지금의 남편과 안간힘을 썼던 3년간의 시간도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10일(한국시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명예의 전당(HOF) 입회 직전의 마지막 라운드도 편하지만은 않았다. 손가락 인대 부상이 여전해 부끄러운 스코어를 내고 머쓱한 잔칫상을 받을지 모른다는 예상도 있었다. 최근 2개 대회에서 각각 첫날 74타·84타를 치고 기권했던 박인비다. 그는 손가락 상태가 호전되지 않을 경우 8월 리우올림픽 출전권도 양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날 미국 시애틀 인근 사할리CC(파71·6,624야드)에서 열린 시즌 두 번째 메이저대회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 1라운드. 1998년 PGA 챔피언십 대회장인 사할리CC는 난도 높기로 유명한 코스다. 어니 엘스는 “거의 매 홀 나무가 코스 안쪽으로 줄 서 있다. 페어웨이를 놓치면 보기라고 보면 된다”며 “무조건 똑바로 쳐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가장 좋아하는 흰색을 위아래로 맞춰 입고 왼손 엄지에는 파란색 테이핑을 한 박인비는 때때로 고전했다. 나무를 피하려 낮게 깔아 친 샷이 벙커에 빠지고 짧은 퍼트도 몇 개 놓쳤다. 하지만 박인비는 버디 3개, 보기 4개를 기록해 1오버파 공동 20위로 무난하게 18홀을 마쳤고 마이크 완 LPGA 투어 커미셔너, 박세리,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과 차례로 포옹했다. ‘침묵의 암살자’ 별명처럼 평온한 미소를 유지하던 박인비는 남편이자 코치인 남기협씨의 품에 안길 땐 감격에 겨운 듯 눈빛이 흔들리기도 했다.
LPGA 투어 명예의 전당은 다른 종목과 비교해 입회가 까다롭기로 악명높다. 로레나 오초아(멕시코)는 입회 포인트 27점보다 10점이나 많은 37점을 쌓고도 7시즌만 뛰었다는 이유로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10시즌을 채워야 조건을 충족한다. 10개 대회 이상 출전해야 한 시즌을 뛴 것으로 인정받는다. 박인비는 이번주 입회를 맞추기 위해 부상 가운데서도 대회 출전을 강행해왔다. 위민스 PGA 챔피언십은 박인비가 지난해까지 3연패 한 대회다. 올해마저 우승하면 사상 최초의 단일 메이저 4연패 기록을 쓴다. 4언더파 선두 브룩 헨더슨(캐나다)과 5타 차라 역전 가능성이 있다.
박인비는 메이저 7승(각 2점), 일반 대회 10승(각 1점), 올해의선수상 1회(1점), 최소타수상 2회(각 1점)로 입회 포인트인 27점을 지난해 채웠다. 데뷔 10년째 열 번째 출전 대회에서 이날 1라운드를 마치면서 입회를 확정했다. 2007년 박세리에 이어 한국인으로 두 번째이며 최연소 입회 종전 기록인 박세리의 29세8개월10일을 27세10개월28일로 앞당기기도 했다.
박인비는 “좋은 일만으로 만들어진 시간이 아니라 좋은 일, 힘든 일 등 모든 것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순간이라 더욱 특별하고 소중한 경험이다. 마지막 홀에서 전설들의 축하를 받는 장면은 상상도 못 했다”면서 “저를 보면서 새로운 세대의 선수들이 더 큰 꿈을 향해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부상에 대해서는 “지난달보다는 상태가 훨씬 좋다”고 했다. 공식 기념식과 파티에 참석한 박인비는 초대한 지인들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지난 10년을 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