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땜질식 구조조정 틀을 바꿔라]"채권단-기업-회계법인 유착고리 끊고 정교한 구조조정 나서야"

<하>지금이 골든타임

책임 두려워 복지부동 안돼

정치권 압박 등 외풍 차단

정부가 컨트롤타워 역할 맡아야



최근의 기업 구조조정 과정을 보면 환부에서 기어이 고름이 터지고 나서야 마지못해 쫓기듯 이뤄지는 양상을 띠고 있다. 감시견이 돼야 하는 채권단과 회계법인, 무능한 기업 경영진 간에 짬짜미 의혹마저 제기되는 판국이지만 정부도 집도의가 되기를 주저하고 있다. 그 결과 골든타임은 속절없이 지나가고 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기회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채권단과 기업, 회계법인 간에 유착고리를 끊고 지금부터라도 과단성 있는 기업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정치권으로부터 외풍 등을 차단하고 산업 패러다임 급변에 따른 산업 재편도 염두에 둔 정교한 구조조정에 나서지 못하면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책임 추궁 두려워 결단 미루는 채권단과 금융당국=공직사회의 복지부동은 구조조정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책임질 결정을 회피하는 이른바 ‘변양호 신드롬’은 국책은행은 물론 금융당국에 만연해 있다. 특히 경남기업에 대한 은행 지원을 강요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김진수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사례는 이런 분위기에 기름을 부었다는 지적이다. 금융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책임을 지면 사달이 난다’는 인식 때문에 금융감독원의 은행담당 부원장은 물론 금감원장도 실무 국장의 책임소재가 우려되는 지시를 꺼릴 수밖에 없게 됐다”며 “과거에야 특정 기업을 살릴지, 죽일지 금융위가 결정하면 금감원이 시중은행들 설득에 나섰지만 지금은 다르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압박도 당국자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다. 채권단에서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음에도 법정관리를 피하지 못한 STX조선 등의 사태 뒤에는 지역 경제 살리기를 명분으로 한 정치인들의 부당한 개입이 있었다.


◇자회사 정리할 유인 없는 산은=KDB산업은행 역시 선제적 구조조정을 막은 주범으로 꼽힌다. 산은에는 500여명의 인력이 구조조정부문과 기업금융부문·산업분석부·조사부 등 기업구조조정과 관련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인력 측면에서는 사실상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그러나 조직 차원에서는 구조조정에 속도를 낼 유인이 별로 없다. 부실기업이든 우량기업이든 산은이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가 많을수록 조직 입장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산은 내에서 소위 고문관이라고 소문이 자자하던 한 과장마저 산은 자회사인 한 기업체에 떡 하니 한 자리 차지하고 있더라”는 한 금융권 관계자의 말은 이 같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지난해 말 기준 산은이 1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은 대우조선해양 등을 비롯한 대기업이 16곳, 중소·중견·벤처기업이 100곳에 달한다. 지분 비율을 5% 이상으로 확대하면 371곳으로 늘어난다. 제대로 된 경영 감시보다는 이들 기업체에 자리 하나 만드는 것에만 신경을 썼다는 질타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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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연명 명분 제공하는 회계법인=기업 부실에 대한 경고음을 못 내기는 회계법인도 마찬가지다. 실사와 감사는 허점투성이였다. STX조선해양 채권단은 지난 2013년 7월 회사와 2조7,000억원을 지원한다는 자율협약을 체결했다. 안진회계법인은 두 달간의 실사를 통해 채권단의 지원을 통한 STX조선의 존속가치(2조2,000억원)가 청산가치(1조2,000억원)보다 높다고 채권단에 보고한 게 근거였다. 그러나 불과 7개월 후 STX조선에 대한 추가 부실이 드러났고 채권단은 1조8,000억원을 추가 지원했다. 실사에서 추가 부실을 잡아냈더라면 법정관리라는 다른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대우조선해양도 마찬가지다.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3월 감사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지난해 기록한 5조5,051억원의 영업손실 중 약 2조원을 2013년과 2014년 재무제표에 반영하는 식으로 재무제표를 대폭 수정했다. 전직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채권단이 기업을 살릴지, 죽일지 판단하는 핵심 근거가 회계법인의 실사인데 과연 회계법인이 그 역할에 충실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책임지고 컨트롤타워 역할 맡아야=현재 구조조정은 환부 수술 등 전략적 고민 없이 기업의 ‘각자도생’만 강조되면서 산업의 새판짜기는 공염불이 되는 분위기다. 실제 정부는 형편이 제각각인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3개 대형 조선사에 ‘인력 30%, 설비 20% 감축’이라는 일률적 잣대를 들이댔다. 심모원려(深謀遠慮) 없는 사실상 ‘버티기’ 전략이나 마찬가지다. 이대로는 구조적 저성장 속에서 우리 산업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진단에 힘이 실린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나서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익명을 요구한 민간 연구소 관계자는 “기업들이 업황을 몰라 구조조정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승욱 보스톤 컨설팅 그룹 파트너는 “국내 기업 간에 사업 포트폴리오와 고객이 겹치는 부분이 많아 산업적 시각에서 정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은의 경우 정책금융부문과 민간금융부문 간 의사결정 구조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산은을 구조조정 전문 조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과거처럼 정책금융공사를 떼내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분리가 안 된다면 적어도 내부 의사결정 과정에서 확실한 장벽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조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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