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아픈 손가락'

/출처=이미지투데이/출처=이미지투데이




“나에겐 다섯씩이나 있어도 얼고 떠는 일촌이 어머니에겐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자식자랑이 결코 그 수효에 따라 수박쪽 나누듯이 분배 되어 줄어드는 게 아니라는 뜻으로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있느냐’는 속담이 있다. 그렇더라도 하나밖에 안 남은 손가락에 대한 집착과 애정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그 생각이 나를 소스라치게 했다.” - 박완서 소설 엄마의 말뚝 中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은 없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더 아프거나 덜 아프거나 아픔의 정도는 차이가 있지 않을까. 살갗이 벗겨져있거나 멍이 채 가시지 않은 손가락은 살짝 부딪쳐도 고스란히 고통이 전해진다.

고인이 된 한국문학의 거장 소설가 박완서씨는 ‘엄마의 말뚝’에서 “하나밖에 안 남은 손가락에 대한 집착과 애정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라고 읊조렸다. 하나밖에 남지 않아서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몇 명이 더 있다고 해도 마음이 쓰이는 정도를 칼로 자르듯 1/n 등분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얼싸안고 품에서 애지중지 키워낸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그러하다.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도 많다. 감정적인 애착이 있으니 당연하다.

가족의 품을 떠나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직장인이 되면 부모-자식과는 비슷한 듯 또 다른 애착 관계가 형성된다. 나이 많은 부장님이 아버지나 어머니 역할을 하기보다는 연차 차이가 많지 않은 선배가 신입사원의 보모 역할을 하게 된다. 모자란 부분은 가르치고 부족한 부분은 채워주고 가끔 따끔하게 혼을 내기도 한다. 선배는 일은 일대로 챙기면서 돌보미 역할을 하느라, 후배는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적응해 나가느라 즐겁지만은 않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지난한 과정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관계가 있다. ‘아픈 손가락’ 같은 후배와 그런 후배를 바라보는 선배다.

“열심히 하는 것 같긴 한데 어딘가 부족해. 아니 솔직히 느려. 그래서 요즘은 노력을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어”


4년차 직장인인 지인이 ‘회사 생활은 어떠냐’는 일상적인 질문에 불쑥 털어놓은 이야기다. 대리 직급을 단 지인은 해마다 여러 명의 신입사원을 후배로 받았다. 그 중에서도 유독 신경 쓰이는 후배가 있는 모양이었다. 다른 신입사원과 일 처리 하는 방식을 비교하고 있자면 너무 답답해서 짜증이 나다가도 데리고 나가 대화를 하다 보면 이해 가는 구석이 많다고도 했다. 느리기는 하지만 조언해주면 고치려고 나름 노력하고 있어 덮어놓고 미워하거나 화낼 수만은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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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생활에서 제일 중요한 업무능력만 본다면 동료들에게 뒤처져도 너무 뒤처지지. 싫다기 보다는 신경 쓰이는 후배야. 그래서 조언도 많이 해주고 더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겨”

지인에게 그 후배는 ‘아픈 손가락’이다. 유독 마음이 가고 관심을 두게 되고 자꾸만 살펴보게 되는 조금은 약한 손가락.

그 후배는 선배의 조언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조언이 아니라 잔소리라고 생각한다면 귀찮고 짜증날 것이다. 관계 때문에 대놓고 싫은 척은 못하지만 신경 좀 그만 썼으면 좋겠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 올랐을 것이다. 충고는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편향된 판단인지는 몰라도 대화 말미에 그 후배는 참 좋은 선배를 뒀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스스로를 객관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셈이니까. 조언이라는 명목으로 감정을 듬뿍 실어 화풀이하는 행태가 아니라면 신경 써주는 선배가 있다는 건 참으로 든든한 일이다.

물론 상하관계를 악용해 나쁜 감정의 찌꺼기를 배출하는 쓰레기통쯤으로만 여기지 않는다는 전제조건은 반드시 충족된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김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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