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외로운 늑대






1996년 1월9일 이른 새벽. 체첸 공화국 지도자 조하르 두다예프의 사위 살만 라두예프가 이끄는 200여명의 무장 군인들이 러시아 남부 다게스탄 자치공화국 인근 소도시 키즐랴르의 러시아 공군기지를 기습 공격했다. 기지에 있던 헬기 2대가 순식간에 파괴됐고 기지를 지키던 33명의 러시아 군인들도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이들은 철수 작전에 돌입하기 전 들이닥친 러시아군에 의해 퇴로를 차단당했고 주민 1,000여명을 인질로 잡으며 저항한 끝에 체첸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비록 이 과정에서 100여명의 동료를 잃기는 했지만 이들은 이 사태를 통해 체첸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자신들의 이름인 ‘외로운 늑대(lone Wolf)’의 존재를 강렬히 각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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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첸 전사를 의미하던 ‘외로운 늑대’가 자발적 테러리스트로 변질돼 우리에게 가장 극적으로 다가온 예는 2004년 6월 고(故) 김선일씨 피살사건. 당시 김선일씨를 살해한 이라크 무장단체 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를 이끌던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가 ‘외로운 늑대’로 불렸기 때문이다. 2011년 청소년 캠프 행사장에서 총기를 난사하고 총리 집무실 근처에서 폭탄을 터뜨려 무려 100명 가까운 사망자를 내면서, 평화로운 나라 노르웨이를 순식간에 지옥으로 만들어 버린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 역시 어떤 단체와도 연계를 맺지 않은 극우 테러리스트였다.

미국에서 사상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해 최소 50명이 숨지고 53명 이상이 부상했다. 2007년 32명이 사망하고 30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의 피해를 훨씬 웃돈다. FBI와 플로리다 검찰은 용의자가 항상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는 증언에 외로운 늑대일 가능성에 조사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한다. 9년 전 버지니아공대 참사처럼 누군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건일지도 모른다. 사회에 남을 보듬어줄 약간의 여유가 작동한다면 그만큼 위험한 테러 행위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송영규 논설위원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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