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북한發 말라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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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2월5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롱비치에서 열린 기술오락디자인(TED) 컨퍼런스. 기조연설을 하던 빌 게이츠가 갑자기 유리병에 담아온 모기떼를 청중에게 살포했다. “말라리아는 모기를 통해 전염된다. 내가 지금 가져온 모기를 풀어놓겠다”고 말한 직후였다. 그는 깜짝 놀란 청중에게 말라리아 모기가 아니라며 안심시킨 뒤 말라리아를 퇴치하자고 강조했다.


세계 최고의 부자인 게이츠가 평생 사업으로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말라리아가 그만큼 인류에게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말라리아는 지금껏 지구상의 모든 전쟁과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더 많은 사망자를 만들었을 정도로 지독한 질병이다. 요즘도 1년에 1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다. 치료 약은 개발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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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리아는 아프리카에만 있는 질병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역사가 깊어 고려사에 첫 기록이 나온다. 조선 시대 인조의 장남으로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간 소현세자를 귀국한 지 2달 만에 죽게 한 것도 말라리아다. 괴롭거나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느라 진땀을 빼는 상황을 우리는 ‘학(질)을 뗐다’고 표현한다. 말라리아, 즉 학질이 옛날부터 치사율이 매우 높은 무서운 질병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말라리아는 우리나라에서 1960년대 말께 완전히 사라졌다가 1993년 휴전선 근처에서 군인 1명이 감염된 것을 시작으로 다시 늘었다. 2013년까지 228명 수준이던 말라리아 환자가 2014년 638명, 2015년 699명으로 급증했고 올해도 환자가 많을 것으로 염려된다. 남북관계 경색으로 북한에 말라리아 방역 장비와 차량, 약품 등을 지원하던 사업이 중단된 게 주요 원인이라고 한다.

땅에는 휴전선이 그어져 있어 사람도 얼씬거리지 못하는데 하늘에는 휴전선이 없으니 말라리아 모기가 마음껏 월남하고 있다. 월남한 말라리아 모기의 공습을 이대로 둘 수는 없다. 북한도 말라리아 모기 문제가 클 텐데 남북이 지금이라도 공동 방역사업을 재개하는 게 어떨까. /한기석 논설위원

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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