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성은 지구 탄생 후 45억년간 보디가드(경호원) 역할을 해왔다. 지구의 300배를 훨씬 넘는 몸무게를 지닌 이 거인은 태양계 바깥에서 날아오는 각종 혜성·소행성 등을 자신의 어마어마한 중력으로 낚아채 다른 방향으로 날려보내 지구를 보호해왔다. 그런데 이 철통 경호를 뚫고 공룡을 전멸시킨 ‘어둠의 무리’가 우리 은하계 저편에 똬리를 틀고 있다면 어떨까.
이 같은 파격적 주장을 내놓은 미국의 물리학자 리사 랜들(사진) 하버드대 물리학과 교수는 지난 14일 서울 고려대에서 기자 간담회를 갖고 암흑 물질에 대한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그는 오는 25일 국내에 출간될 ‘암흑 물질과 공룡…우주를 지배하는 제5의 힘’이라는 저서에서 태양계를 감싸고 있는 은하계 근처에 암흑 물질들이 모여 원반을 이루고 있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태양계가 이들 암흑 물질 원반을 약 3,200만년마다 한 번꼴로 지나며 이것이 방아쇠가 돼 태양계 바깥을 껍질처럼 감싸고 있는 천체 집단인 오르트구름 속의 혜성·소행성이 태양계 안쪽을 향해 날아온다는 내용이다. 이런 소행성이나 혜성 중 일부가 6,600만년 전 지구와 충돌해 공룡을 멸종시켰다고 랜들 교수는 주장했다.
암흑 물질이란 우주 물질 중 23%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암흑’이라는 표현처럼 도저히 보이지 않는 물질을 통칭한다. 우리가 맨눈으로 볼 수 있게 하는 가시광선은 물론이고 X레이, 감마선, 적외선·자외선 등 어떤 전자기파로도 존재가 감지되지 않았다.
한때 과학계는 빅뱅(우주의 태동이 된 대폭발) 이후 우주가 팽창을 거듭하고 있지만 속도가 서서히 둔화되고 있다고 추정해왔다. 하지만 실제로 관측해보니 오히려 팽창은 더 빨라지고 있었다. 그래서 팽창을 가속시키는 다른 중력원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게 됐고 이를 암흑 물질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렇다면 암흑 물질의 존재 유무가 우리의 삶과 세상에서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
랜들 교수는 “이 연구를 하면서 필요성에 대해 대중이나 정부를 반드시 설득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며 “과학은 순수한 지적 탐구와 호기심·흥미에서 시작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십조 원의 자금이 투입된 초대형 입자가속기 등을 이용하며 연구에 전념하는 미국 학자의 배부른 소리로 치부하기에는 한국 과학계에 던지는 의미가 적지 않다. 기초연구의 경제적 타당성을 입증하라는 기획재정부의 요구에 짓눌리는 우리 기초과학자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