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중>이직 전전하다 10년째 신입 임금... 비정규직의 비애

[기획]사회 '밑단' 하청 청년의 짙은 한숨소리

스무살에 사회에 나온 청년들은 대부분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입사를 준비한다. 하지만 몇십만원도 없어 산업기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시험 등록도 못하는 이도 있다. 비정규직으로 회사로 들어가지만 이들이 마주하는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이들 비정규직 하청 청년들의 민낯을 취재했다.

▲계속된 단순 노무업에 끊임없이 이직만 되풀이...‘10년째 같은 임금’


올해로 2년째 프레스 공장에서 일하는 백하늘(22· 가명)씨는 오늘도 손마디가 성한 곳이 없다. 백씨는 “돌아가는 라인 위에 안전 장비를 설치하면 기계 작동이 느려져 회사에서 안전 장치를 제거해 버렸다”고 말했다.

자동차 산업 조립 라인에서 일하는 이재인(32· 가명)씨는 “고등학교때 산업기사 자격증은 땄지만 막상 사회에 나오니 단순한 일만 시켜 자격증이 전혀 쓸모 없다. 기술은 배우고 싶은데 제대로 된 경력이 쌓이지 않아 이직만 수차례다. 1년씩 재계약을 하는데 임금이 높은 곳을 찾다 보니 노동 강도만 센 곳으로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경제적 어려움에 빨리 사회에 나가 기술을 배우려 하지만 정규직 자리도 많지 않고 이들에게 주어지는 업무는 누구나 대체 가능한 단순 업무가 대부분이다. 임금에 비해 노동 강도도 세고 계약도 1~2년 단위로 되풀이하다 보니 자연스레 더 높은 임금을 찾아 이직을 반복하게 된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취업난에 나오는 일자리도 대부분 비정규직 자리다. 2016년 한국노동연구원이 내놓은 ‘최근 비정규직 노동시장의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임금근로자로 신규채용(근속기간 3개월 미만)된 15∼29세 청년층 중 비정규직 비중은 64%로 8년 전에 비해 약 10%포인트 높은 수준을 기록해 비정규직으로 취업하는 청년들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통계청이 2015년 3월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에는 비정규직 근로자 중 단순노무 종사자는 187만 6,000명(31.2%)으로 전년대비 6.3% 증가했다.

경력을 오래 쌓아도 이직을 한 번 하면 신입 사원 월급을 받아 임금이 되레 줄어든다. 경력과 상관없이 입사연차로 월급을 매겨 매년 신입 월급을 되풀이 하기 때문이다. 케이블 사에서 20년 넘게 근무한 이모씨는 “이 업계는 유독 고용 불안이 심해 이직을 10년간 10번 하는 경우도 수두룩 하다. 물론 처음엔 버틴다고 버티지만 사업자가 바뀌어 속수무책으로 나갈 때가 부지기수다. 새로 들어가면 신입 임금이라 10년 넘게 신입 월급인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청년 비정규직 현황과 대안’에 의하면 청년 노동자 중 정규직으로 한번 이상 고용된 적이 있는 비율은 13.2%에 불과한 반면, 비정규직으로 한번 이상 고용된 적이 있는 비율은 51.3%로 약 4배에 가까웠다. 또 비정규직으로 취업한 횟수가 5회 이상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13.6%인 점을 감안했을 때 대다수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이직을 해도 비정규직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피 터지는 경쟁’ 만드는 ‘비정규직간 대결구도’

비정규직간 ‘경쟁’을 붙이는 ‘잔인한 먹이사슬 구조’도 이들의 고용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통신사 비정규직의 경우 대기업 통신사의 상품을 설치, 수리하고 있지만 외부 업체에 고용된 간접 고용 비정규직이다. 원청에서는 두 비정규직 집단을 두고 전국의 업체를 평가해 평가 지표가 낮은 업체와는 매년 3곳씩 계약을 해지한다.

같은 시간대에 세 집을 방문하라는 살인적인 스케줄을 주고, 갓 들어온 신입의 경우 기술이 손에 익지도않은 상황에서 혼자 작업장에 들어가기도 한다. 일은 겹치고, 속도는 느려질 수밖에 없고 그 성적은 고스란히 작업 지표에 찍힌다. 별다른 수가 없어 반발을 하면 ‘자르겠다’거나 ‘월급을 차감하겠다’고 해 어떤 말도 꺼낼 수 없는 상황이다. 심지어 전신주를 타거나 지붕 위에 올라가야 하는 일이 많지만 안전모 등의 안전장비도 받지 못하고 작업복도 개인 사비로 하는 경우도 있다.

제 3하청 케이블 설치기사 권모씨(사업장 노동조합 정책실장)는 “기사들은 매일 야근을 하고 집에 가서 고객에게 ‘해피콜에 잘 응대해달라’ 사정을 하거나, 해피콜에 ‘고객이 매우 감동했다고 말해 달라’고 부탁한다. 고객이 까다로울 땐 없는 사비를 털어 선물을 주거나 우리집 케이블 선을 하나 더 깔아서 채우기도 한다. 연륜있는 작업자는 어떻게든 하는데 청년들은 심지어 그렇지도 않아 점수는 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제 3하청 케이블 설치기사 권모씨(사업장 노동조합 정책실장)는 “기사들은 매일 야근을 하고 집에 가서 고객에게 ‘해피콜에 잘 응대해달라’ 사정을 하거나, 해피콜에 ‘고객이 매우 감동했다고 말해 달라’고 부탁한다. 고객이 까다로울 땐 없는 사비를 털어 선물을 주거나 우리집 케이블 선을 하나 더 깔아서 채우기도 한다. 연륜있는 작업자는 어떻게든 하는데 청년들은 심지어 그렇지도 않아 점수는 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명백한 산업 재해임에도 보험을 신청하지 않도록 회유하는 회사도 상당하다. 지난해 2월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 직원으로 일했던 신민주(21)씨는 매장에서 뜨거운 물에 화상을 입고 산재 처리를 요청하자 사장은 신씨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신씨가 이를 거부하자 사장은 “산재로 처리해 주는 대신 6개월 근로계약을 하고, 그 안에 결근하면 한 달 월급을 안 주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신씨는 결국 일을 그만뒀다.


지난해 한 제조업체는 생산공장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신청을 하지 않아 해당 노조원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재해 종류는 작업 중 쇳가루가 눈에 들어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 당일 공장에 복귀한 사고와 프레스롤에 붙은 고무를 떼던 중 작업자 손이 본체 롤 사이에 끼여 왼쪽 손가락 3개가 터지는 사고 등 다양했다. 2015년 노동부의 산업재해 발생 현황에 따르면 18~24세 연령층 재해자(사망자) 수는 2012년 3,291(22)명, 2013년 3,323(28)명, 2014년 3,566(29)명, 2015년 3,557(33)명으로 각각 증가세를 보였다. 이들은 다른 연령대에 비해 업무숙련도가 낮지만, 위험한 작업에 쉽게 노출돼 산업재해 및 사망사고 발생률이 높았던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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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폐업, 부도로 불안정한 하청…‘도미노 피해’는 하청 자체의 본질적인 문제

안정적으로 물량을 공급받지 못하는 하청 자체의 본질적인 문제도 크다. 원청에서 요청하는 물감이 수시로 바뀌다 보니 제 2, 3 하청들은 줄줄이 위태로워 직원들을 해고할 수 밖에 없기도 하다.

부품 일하는 최진석(32· 가명)씨는 “핸드폰 등을 조립하는 라인이 많은데 한철 주문량이 뚝 떨어지면 수단 방법 안 가리고 욕을 하며 직원들을 쫓아낸다. 주로 막내들이 그 타깃이 된다”고 현장의 어려움을 말하기도 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전체 중소 협력업체 300여 곳 중 57곳이 폐업을 했고, 지난달 10여 개의 업체들이 더 문을 닫았다. 대우조선의 중소 협력업체도 전체 187곳 중 약 20%인 37곳이 지난해 폐업하기도 했다. 충청북도 청주 보일러업체에서 하청으로 근무했던 한인수(27, 가명)씨는 “임금 지급을 계속 미루다가 286만원 중 230만원을 받았는데 이후 사장과 연락이 끊겨버렸다. 회사가 부도나서 사장 번호도 바뀌고 사무실도 사라졌더라. 형사고발을 하려고 원청에 연락했지만 원청에서는 알아서 해결하라고 한다”며 노동상담을 통해 답답한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대기업이 납품 단가 인하를 요구하면, 그에 맞추기 위해 밑단계의 하청기업은 인력과 임금을 줄이게 되고 1차 협력 업체는 그 부담을 2차 협력업체에게, 2차 기업은 3차 협력업체에게 미루게 된다. 하청이 내려갈수록 각 단계별로 고용 불안은 더 심해진다. 중소기업연구원은 올 1월 전국 소상공인 기업이 1년 내에 폐업할 확률이 40.2%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를 밝히기도 했다.

박혜영 노무사는 “노동 악순환 구조때문에 가장 기술이 없고, 가장 사회에 대해 모르는 청년들이 많은 피해를 입고 있다. 삼성 제3하청 업체에서 메탄올 중독 현상을 보인 하청 노동자들도 모두 청년층에 속해 있었다. 하청, 파견, 더 넓게 보면 원청 업체에 이르는 모든 대한민국 노동자들에게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고, 문제의 근본은 대기업의 부도덕한 경영층과 이를 묵인하는 무능한 정부에 있다”고 말했다.

***제 3탄 “하청청년 양산하는 2016 대한민국…무엇이 달라져야 하나?”에서는 산업 현장에 뿌리 깊게 자리한 청년 비정규직 고용의 대안에 대해 다룰 예정입니다.

/정수현 이종호기자 김인경인턴기자 value@sedaily.com

정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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