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등 유럽으로 농기계를 수출하는 A업체의 B 대표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소식이 전해지자 눈앞이 깜깜해졌다. 유로화 대비 원화 환율 1,300원을 기준으로 잡고 연초에 사업계획을 수립했는데 브렉시트로 유로화나 파운드화의 약세가 예상돼 수출 경쟁력 저하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B 대표는 “유럽 수출에 대한 전략 궤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비상대응체제를 가동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우려했던 브렉시트가 현실화되자 24일 국내 기업들은 파장 분석과 대응책 마련을 본격화했다. 특히 대기업들은 파운드화 절하와 경기 위축으로 영국에 대한 수출에 타격을 받는 것은 물론 중장기적으로 유럽 경기 둔화와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고 판단, 수출전략을 재점검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우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곳은 삼성과 LG 등 전자업종이다. 우선 휴대폰 판매가 걱정이다. 휴대폰, 전자기기 부품 등은 일단 자유무역협정(FTA)과 관계없이 정보기술협정(ITA)에 따라 영국에 무관세 수출되고 있어 곧바로 현지 판매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전체 유럽 경기 위축으로 연결될 경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삼성전자는 최근 갤럭시S7을 중심으로 유럽 지역에서의 판매 회복이 뚜렷한 상황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판단, 대응 방안 마련에 나섰다.
냉장고·에어컨·TV 등 생활가전제품의 경우 환율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유로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원화 가치가 강세를 보이면 수출 기업에는 불리한 환경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대형 전자업체의 한 임원은 “유럽 지역 소비심리 위축이 가장 크게 걱정된다”며 “환율 변동성이 커지는 점도 장기적으로 판매 등에 영향 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자동차 업계도 투표 결과에 따른 영향 점검에 착수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올 들어 지난 5월까지 전년보다 7% 늘어난 7만8,000대를 팔았다. 유럽 전체 판매량의 20% 수준으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만큼 타격이 클 수 있다.
더욱이 지금은 유럽에 체코(현대차)와 슬로바키아(기아차)에 생산공장을 운영하면서 영국에는 유럽연합(EU)과 체결한 FTA에 따라 현재 무관세로 수출하고 있지만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면 2년의 유예기간을 거친 후 10%의 관세를 내야 한다.
생존에 몸부림치는 해운 업계는 울상이다. 가뜩이나 얼어붙어 있는 해운경기가 더 위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진해운은 아시아~유럽 항로에서 매주 평균 2만3,023TEU, 현대상선은 8,254TEU의 화물을 운송하고 있다. 전체 운송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 안팎에 불과하지만 영업망을 공유하는 해운 업계의 특성상 유럽 시장에서 치열하게 각축 중인 동맹업체들이 부진할 경우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세계 금융 내에서 런던의 위상 약화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에 현지에 진출한 금융회사들은 벌써부터 유럽 본사 이전을 검토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영국에 유럽본부를 둔 대형 금융사 관계자는 “브렉시트 발생 시 글로벌 기업의 탈영국 러시로 영국 내 일자리 감소가 불가피할 것”이라며 “EU 금융규제의 틀 안에 남기 위해 유럽본부를 아일랜드로 이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을 포함한 EU를 대상으로 의료기기를 수출했던 업체 관계자는 “국내에서 검증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해외 전시회에 잇따라 참가해 좋은 반응을 얻었는데 브렉시트 사태가 터져 한숨만 나온다”며 “중국이나 중동 쪽으로 방향을 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엔고 반사이익에 대한 기대도 나온다. 자동차 업체의 경우 일본 완성차 업체에 비해 엔화 가치가 올라가 환율 경쟁력에서 우위가 기대돼 EU 지역의 전체적인 내수 위축을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온다.
생산기지 역시 국내 업체들은 동유럽에 두고 있지만 도요타·혼다·닛산 등 일본 차들은 영국에 두고 있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다른 유럽 국가로 수출하는 일본 차의 가격이 높아져 상대적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 사이에서는 그동안 한·EU FTA 등으로 누려왔던 무관세 혜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영국과의 양자 FTA 체결 등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무역협회는 “영국의 EU 탈퇴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새로운 FTA 체결에 나서고 EU·영국에 대한 수출과 투자전략도 새로 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혜진·서정명·한동훈기자 has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