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원전 내 고준위 방폐장 추가설치-반대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

후대에 경제적 책임·위험만 물려주는 꼴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하고 남은 핵연료봉 등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시설을 원전 부지 내에 단기간 추가 설치하자는 정부 안이 나오면서 인근 지역 주민 및 환경단체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처리할 곳이 국내에 아직 없어 원전 부지에 임시 보관되고 있지만 그마저도 오는 2019년부터 포화상태가 된다. 산업통상자원부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에 따르면 각 원전 내 건식 단기저장시설을 설치하고 이를 중간저장시설이 가동되는 2035년까지 활용한다는 방안이다.

정부 안 찬성 측은 현재 핵폐기물 저장공간이 포화되기 전에 중간저장·영구처분시설이 가동되기 전까지는 원전 내 임시로 단기저장시설을 추가로 설치하는 게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반대 측은 현재 방폐장 부지 선정 및 관리에 심각한 문제가 상존하는데도 임시저장시설을 추가로 만드는 것은 편의만을 고려한 임시방편에 불과하고 다음 세대에 위험과 부담을 전가하는 것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원자력발전 산업은 1980년대 후반부터 선진국으로부터 개도국으로의 이전이 진행 중이다. 지난 30년간 세계 원전산업은 전혀 성장이 없었는데 개도국의 진출 속도와 선진국의 후퇴 속도가 엇비슷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전형적인 사양산업의 초기현상이다. 선진국에서, 특히 유럽에서 원전 수를 지속적으로 줄인 것은 미국의 스리마일과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원전 사고 등을 고려한 원전의 위험도를 계산하면 경제성이 없다는 것이 선진국의 평가다. 여기에다 사용후핵연료, 즉 고준위핵폐기물의 처리비용을 고려하면 원자력의 경제성은 형편없이 악화된다. 고준위핵폐기물은 사람이 그 앞에 몇 분간 서 있기만 해도 사망하게 되는 맹독성 물질이다. 또한 그 독성이 없어질 때까지 최소 10만년 동안 안전하게 보관해야 한다. 그래서 10만년간 방사능 누출이 없는 공간인 고준위처분장을 건설해야 하지만 아직 우리 인류에게는 그 기술이 없다. 우리나라도 현재까지 약 1만4,000톤의 고준위핵폐기물이 발생했지만 그 대부분은 원자로 옆에 있는 보조건물에 임시저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포화가 가까워지는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공간을 원전 부지 내에 새로 확충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임시방편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고준위핵폐기물은 이렇게 임시방편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엄청난 비용과 노력을 들여서 기술개발을 하고 부지를 검토하고 국민들을 설득해야 해결이 가능한 문제다. 이러한 노력은 등한시하면서 부지 내에 임시저장시설만 늘리면 위험한 고준위핵폐기물 문제는 고스란히 다음 정권, 혹은 다음 세대의 부담이 될 것이 자명하다. 우리 사회에 통용되는 ‘발생자부담원칙’을 따라서 우리 세대가 만든 핵폐기물은 우리 세대가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원자력의 혜택을 받고 있는 우리 세대가 돈을 내고 노력을 기울여서 고준위처분장을 건설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한수원과 정부는 처분장 건설을 위한 연구나 부지 선정, 국민 설득에서도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이렇게 뒷감당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도 정부는 원전 건설에만 혈안이 돼 있다. 잘못된 수요예측에 따라서 과다하게 건설된 원자력발전소들 때문에 많은 발전소들이 가동을 못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정부는 최근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더 많은 핵폐기물을 발생시킬 것이다. 무책임한 의사결정의 극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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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스러운 것은 신고리 5·6호기에는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을 두 개 만들어서 그 용량을 늘린다는 점이다. 원전에서 발생하는 핵폐기물 문제를 무책임하게 뒤로 미루겠다는 의도로 보이는데 이는 현재 추진 중인 부지 내 임시저장소 확충 계획과 일맥상통하다.

그러나 고준위핵폐기물 문제는 이렇게 임시방편을 쓰면서 뒤로 미룰 일이 아니다. 후손들에게 경제적 책임과 위험을 감수하게 만드는 것은 도덕적으로 용인되기 어렵다. 하루빨리 근본적으로 이 문제를 책임질 방도를 마련해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기술개발, 부지 선정, 국민 설득에 나서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이 논의에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 바로 고준위핵폐기물의 총발생량이다.

고준위처분장을 건설해 책임 있게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 처분장의 규모를 결정해야 한다. 규모를 결정하려면 이 처분장이 들어갈 고준위핵폐기물의 총량이 결정돼야 하는데 이 총량이 결정되려면 우리나라가 몇 기의 원전을 언제까지 운영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다시 말해 원자력산업의 전체 시나리오가 나와야 고준위처분장의 규모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고준위핵폐기물을 만들어낼 것인지에 대한 총량도 결정하지 않고 임시저장을 늘려가면서 위험과 비용을 다음 세대에 전가하는 현재의 방식은 너무나도 무책임하다. 하루빨리 이 문제의 근원적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또한 한동안 임시저장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안전성과 국민 설득 문제가 남는다. 임시저장시설은 안전성에서 처분장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취약하다. 현재 진행 중인 부지 내 임시저장시설은 경주 월성원전에 있는 건식저장시설을 모델로 한 것인데 이 건식저장시설은 외국 경우와는 다르게 현재 건물 밖에 노출돼 있다. 외부 사고나 테러에 매우 취약한 상태다. 안전성에 관한 면밀한 평가가 필요하고 이와 관련된 정보를 지역 주민들에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 정보공개와 충분한 설명으로 인근 주민과 국민의 동의를 얻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는 과정은 이러한 노력이 너무나 부족하다. 이렇게 충분한 설명도 없고 동의를 구하는 절차도 무시하면서 밀어붙이기 식으로 이 사업이 진행돼서는 곤란하다. 정부는 부지 내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 확충이 한수원의 현재 편의만을 고려하는 사업이 아닌지 깊이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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