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의약품 자동판매기 설치- 반대

강봉윤 대한약사회 정책위원장

과량·오투약 사고로 국민건강 되레 위협





약국 앞 의약품 자동판매기 설치 허용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정부는 환자 편의를 위해 심야 시간이나 공휴일에도 약사의 복약지도를 거쳐 자판기를 통해 의약품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약사법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자판기 취급의약품은 일반의약품으로 제한되며 약사가 자판기에 설치된 영상기기를 통해 화상으로 환자에게 복약 지도를 해야 한다. 약국 개설자는 의약품의 판매, 복약지도 등 전 과정의 화상상담 내용을 녹화해 6개월간 보관해야 한다. 약 자판기 설치 찬성측은 약사의 복약 지도를 강화하고 복용 사고를 막기 위한 정확한 정보제공이 전제될 경우 일반의약품 사용에 대한 소비자 편익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대한약사회 등 반대측은 기계를 통한 상담으로는 환자 상태를 정확히 알기 어려워 약물 오남용과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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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원격 화상 투약기를 약국에 설치해 일반의약품을 판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찬성론자들은 원격 화상 기술력이 우수하고 약사가 상담을 통해 판매하는 만큼 소비자가 선택할 수 없고 약사의 복약지도를 거치므로 의약품을 더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기술력은 좋아졌는지 모르겠지만 원격 진료의 개념은 아직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기기 불완전은 차치하고라도 원격 방식이 환자 상태를 확인하는 데 왜곡된 정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원격 화상 투약기도 마찬가지다. 현행 약사법 제50조의 입법목적은 약사가 환자 직접 대면을 통한 충실한 복약지도, 의약품 보관·유통과정에서의 변질 및 오염 가능성 차단, 중간과정 없는 의약품 직접 전달로 약화 사고 책임 소재를 분명하게 하는 것에 있다. 원격 화상으로 입법목적에서 지적하는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먼저 원격의 개념을 논의하기 전에 이 기기가 기대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기기가 외부에 있고 야간에 화상으로 환자를 접하게 되는 것이므로 악천후나 야간 소음 등으로 과연 정상적인 상담이 가능할지 의구심이 든다. 또 환자의 건강 및 음주 상태 등은 물론 약사의 건강 및 근무 상태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다. 이러한 여건이라면 오투약과 같은 약화 사고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원격 화상 투약기의 의약품 보관이나 통신 보안성 등도 문제가 되는 부분이다. 물론 도입하려는 측의 입장에서는 기술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하겠지만 혹서기나 혹한기 같은 상황에서도 무리가 없는지, 통신 장애나 해킹으로부터 안전한지 등에 대해서도 우려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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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인 부분을 떠나 과연 약에 대한 접근성을 어느 범위까지 확대해줄 것인지도 쟁점 중 하나다. 질병 치료를 위해 의약품을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의약품은 단순한 공산품이 아니라 생명품이다. 따라서 과다 복용하는 것만큼 위험한 행동은 있을 수 없다. 의약품에 대한 규제가 거의 없는 미국에서는 타이레놀과 같은 일반의약품 과량 투약으로 인한 부작용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사망에까지 이른 경우도 있다. 관련 조사에 따르면 사용 목적 없이 의약품을 투약하는 젊은 층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연 보건의료 사각시간대에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이 기기로 일반의약품 판매를 확대하는 것일까. 약을 구입할 수 있는 편의가 늘어나는 만큼 약 소비는 증가하게 될 것이며 그에 따른 부작용은 필연적으로 동반될 수밖에 없다.

몇 가지 의약품을 기기에서 구입해 복용하면 편리할 수는 있으나 과량 투약이나 오투약으로 부작용이 발생하면 불필요한 건강보험 재정이 소요되는 문제도 있다.

반면 현실적으로 심야나 공휴일에 아이들이 뛰어놀다 넘어져 간단한 외과적 처치가 필요해도 접근성도 떨어지고 비용도 아주 많이 드는 응급실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정작 보건의료 사각시간대에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약사와 의사의 직접 대면에 의한 의료 서비스가 아닐까.

현재 우리나라에 약국은 2만1,000개소가 넘어 접근성이 아주 좋은 편이다. 인구 10만명당 약국 수는 41.8개소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5.1개소를 크게 웃돌고 있다. 그만큼 약국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져 있다. 이러한 조건이라면 원격 화상 투약기라는 생소한 기계장치를 도입할 것이 아니라 기존의 약국 시스템을 활용해 국민의 약국 접근성을 보장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야간이나 공휴일에 진료하는 소아과 병원이 없어 경증임에도 응급실을 방문해야 했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 2014년부터 달빛어린이병원과 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90% 정도가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제주·대구·경기도에서 지자체 지원을 받아 심야 공공약국이 운영되고 있는데 주민의 호응이 높다. 정부 차원의 심야 공공병원과 약국을 법제화해 대폭 확장 운영한다면 보다 많은 국민이 적절한 진료를 합리적인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 공휴일 당번약국과 의원을 상호 연계해 운영하는 방법을 제도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비현실적인 원격 화상 투약기 도입으로 단편적이고 미봉책인 보건의료 사각시간대 국민의 건강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하는 것보다 훨씬 실효적인 정책이 아닐 수 없다.

차제에 의약품 안전 사용에 대한 교육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평소 의약품을 관리하고 올바른 복용법 등을 이해하며 적정량의 가정 상비약을 준비하는 요령 등을 익힌다면 보다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강봉윤 대한약사회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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