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냉전2.0시대]신·구 패권 强대强 충돌...'국지적 무력분쟁' 최악사태 오나

'중국몽' 부르짖는 中·옛 영광 재연 노리는 러시아

'일극 체제' 지키려는 美와 한치 양보없는 충돌

아세안·印 등 주변국가까지 소용돌이 휘말려

"상호의존 심화...최악 사태 없을 것" 낙관론도



최근 한반도·남중국해·동유럽 등에서 미국, 중국, 러시아, 서구 유럽 국가가 사사건건 충돌하면서 ‘냉전 2.0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일극 체제 유지와 대중 봉쇄를 위해 ‘아시아 중심축’ 전략을 노골화하는 미국, 신형 대국관계를 부르짖는 중국, 옛 소련의 영광을 재연하려는 러시아 등 신ㆍ구 패권 국가들의 힘겨루기가 냉전 이후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탓이다.

특히 전세계에서 배타적 국수주의가 기승을 부리는데다 패권 경쟁의 불똥이 아세안·인도 등 주변국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 위험 요인이다. 일각에서는 주요국 지도자들이 ‘강력하고 위대한 국가’를 요구하는 국내 여론에 밀려 ‘강 대 강’ 정책을 펼칠 경우 우발적 충돌이 자칫 국지적 군사 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기존 패권국과 신흥 세력이 충돌해 파국에 이르는 ‘투키디데스 함정(Thukydides’ trap)’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시절 강대국 스파르타가 신흥 세력 아테네를 제압하기 위해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벌인 것을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논하며 비롯된 이 말은 기존 패권국과 신흥 강국의 대립이 무력 충돌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음을 의미한다.


◇신ㆍ구 패권 곳곳에서 충돌=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병합,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 간 영유권 분쟁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주요국 간 군사분쟁이 올 들어 심상찮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올 4월 북해 상공에서 러시아 전투기는 미군 구축함에 9m까지 접근하는 아찔한 위협 비행을 했다. 이달 초에는 센카쿠열도 상공에서 중국과 일본 전투기가 공격 동작까지 취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또 2014년 이후 미국·러시아·중국 등 3대 핵 강국은 냉전 시대를 방불케 하는 핵 군비 확장에 들어간 상태다.

더구나 12일 네덜란드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의 남중국해 영유권 판결 등 대형 뇌관이 대기하고 있어 추가 충돌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이미 중국은 어떤 판결 결과도 수용하지 않겠다며 지난 5일부터 11일까지 남중국해 파라셀 군도에서 무력시위에 들어간 상태다. 미국 역시 지난달 말 남중국해 인근에서 항공모함 2척을 동원한 군사 훈련을 펼쳤다.


동유럽에서는 2년 만에 다시 군사 분쟁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8∼9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정상회의를 열어 폴란드와 에스토니아 등 러시아 접경 4개국에 4,000명이 넘는 4개 대대 병력을 파병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냉전 이후 나토의 파병으로는 사상 최대다. 러시아는 즉각 반발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은 “나토는 냉전을 ‘뜨거운 전쟁’으로 악화시키려는 준비를 시작했다”며 “나토 정상회의의 모든 말들은 거의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하고 싶다는 표시”라고 맹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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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냉전 시대보다 더 위험할 수도=물론 최근 글로벌 패권을 둘러싼 전략적 경쟁이 고조되고 있지만 신냉전 시대의 도래로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특히 상호 파멸을 부르는 군사 충돌로 발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압도적이다. 과거 냉전 시대와 달리 미국·중국·일본 등의 경제적 상호 의존성이 심화하고 있어 최악의 사태가 우려될수록 대화 노력도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를 감안할 경우 중국·러시아가 함부로 대들 수도 없는 처지다. 올해 미국의 국방비 예산은 6,171억달러로 나머지 10위권 나라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다. 2위인 중국은 1,928억달러에 불과하고 러시아는 507억달러로 나토 회원국 전체의 8% 정도다.

문제는 과거 냉전 기본 구도가 미국과 소련 간 대결로 단순했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주변국 가세로 갈등 양상이 더 복잡해졌다는 점이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의 여파로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태국·필리핀 등의 지난해 국방비 지출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 5월 미국은 베트남에 대한 무기 금수 조치를 전면 해제하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으로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필리핀·베트남 등 아세안 회원국과 일본·인도·호주 등을 끌어들여 대중 봉쇄에 나선 상태다. 이 때문에 PCA 판결 이후 필리핀 등과 중국 간의 국지적 충돌이 벌어질 경우 미국은 개입이 불가피한 처지다. 하지만 중국도 남중국해는 주권의 문제라며 일체의 타협을 거부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극한 갈등을 빚었지만 상호 핵무기 발사 위험에 물밑에서 적당히 타협했던 과거 냉전 시대 ‘게임의 룰’이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뉴욕=최형욱특파원 choihuk@sedaily.com

최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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