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전 정명훈 전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은 흰색 셔츠와 바지를 입은 편안한 옷차림으로 인천공항 입국장으로 들어섰다. 지난해 연말 서울시향과 함께 지낸 10년의 시간을 내려놓고 떠난 지 7개월 만의 귀국이다. 그를 둘러싼 취재진을 향해 던진 말은 “진실이 밝혀질 때가 왔다”는 뼈가 있는 한마디. 서울시향을 둘러싼 얽히고설킨 진실 게임이 이번 기회에 풀릴 수 있을까.
정 전 감독의 이번 일시 귀국은 명예훼손과 항공료 횡령 등의 의혹을 받고 있는 그가 그동안 미뤄온 검·경의 조사를 받기 위해서다. 정 전 감독은 항공료 티켓을 받은 후 취소하는 방식으로 항공료를 횡령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으며 올해 3월 박현정 전 시향 대표에게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 피소되기도 했다. 정 전 감독은 입국 다음날인 14일 오전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에 출석해 피고소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을 계획이며 다음날인 15일 서울 종로경찰서에 출석, 부당하게 가로챈 항공료가 있는지를 조사받을 예정이다.
정 전 감독이 작심하고 검·경의 조사에 임하기로 한 이상 서울시향을 둘러싸고 있는 각종 의혹이 이번 기회 해소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2014년 12월 폭언·인사 전횡·성추행 등에 대한 서울시향 임직원들과 박현정 전 시향 대표와의 갈등이 표면화되며 시작된 일명 ‘서울시향 사태’는 시간이 흐르며 당초 가해자로 지목됐던 박 전 대표가 경찰의 무혐의 결론을 받아내고 피해자였던 서울시향 직원이 무고죄로 수사를 받는 등 반전을 거듭해 왔다. 경찰이 직원들의 배후로 정 전 감독의 부인 구 모씨를 허위사실 유포 지시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고 정 전 감독이 예술감독직을 사임하기도 했다. 급기야 올해 3월 박 전 대표가 정명훈 전 감독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며 사건은 초기 의혹에서 완전히 뒤집히는 듯 보였지만 정 전 감독이 박 전 대표를 무고죄로 맞고소하며 진실에 대한 의혹은 다시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태다.
이날 정 전 감독은 자신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박현정 전 대표 측의 주장에 대해서는 “따로 입장은 없다. 나중에….”라고 모호한 답변을 남겼지만 앞서 법무법인 지평을 통해 “앞으로 음악에 전념하기 위해서라도 근거 없는 비방과 허위 사실에 대해 단호히 조치해 나갈 계획”이라는 입장을 남긴 만큼 조사에 적극적으로 임할 가능성이 높다. 정 전 감독은 2014년 말부터 시작된 서울시향 사태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지난해 말 부인 구 모 씨가 경찰에 불구속 입건되는 등 연루되자 ‘더 이상 참지 않겠다’며 법률대리인을 선임하는 등 반박을 시작한 바 있다. 법률대리인 법무법인 지평 측은 “정 지휘자는 본인에 대한 명예훼손이 도를 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이번 조사를 통해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