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같은 질문을 던지는 전시 ‘사진:다섯 개의 방’이 14일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내 두산갤러리 서울에서 개막해 8월27일까지 열린다. 김도균·김태동·백승우·장태원·정희승 등 왕성하게 활동하는 5명의 사진작가를 통해 한국 현대사진의 오늘을 들여다봤다. 미술관 입구 윈도우갤러리에서 이들의 대표작을 먼저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막상 전시장 안에는 사진이 아닌, 작가가 추구하는 사진의 본질과 의미가 각자의 방식으로 펼쳐진다.
작가 장태원은 커다란 여성 인물사진을 벽에 붙인 다음 칼로 도려냈다. 엄밀히는 일정 기준 이하의 밝기를 갖는 어두운 부분, 즉 그림자를 잘라냈다. 우리가 사진에서 보는 것은 필름이 흡수한 ‘빛의 부분’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빛과 그림자, 시간성을 사진으로 표현하는 장 작가의 대표작으로는 가동하지 않는 옛 공장지대의 밤 풍경을 장노출 기법으로 찍어 실제는 암흑이지만 환하게 빛나는 모습으로 보여준 사진 등이 꼽힌다.
백승우 작가는 아예 사진을 걸지 않았다. 대신 영국의 공공장소에 특정 인물이나 역사적 사건을 기념해 설치된 동판인 ‘블루 플라크’를 본 떠 만든 5개의 설치작품만 선보였다. 훈장과도 같은 이 동판에는 ‘리얼 월드’ ‘유토피아’ 등 작가의 대표작 이름과 제작 시기가 적혔다. 백승우는 북한 선전물의 이미지를 왜곡해 비현실인 풍경사진으로 만든 ‘유토피아’ 시리즈를 비롯해 일상적 사진들이 개인과 사회적 배경에 의해 달리 해석되거나 왜곡되는 과정까지를 작품에 포함시킨다. 뒤샹이 변기를 전시장에 내놓으면서 ‘맥락을 벗어난’ 변기가 예술이 되게 했듯, 작가는 맥락과 기존 의미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사진의 새로운 형식과 개념에 도전한다.
작가 정희승은 사진 대신 책을 전시했다. ‘좋은 이웃의 법칙’이란 제목의 이 설치작품은 작가에게 영감을 준 책과 관심을 둔 화집들 54권이다. 대신 작가는 자신이 찍은 사진으로 책 표지를 다시 입혔다. 이로 인해 저자나 제목이 갖는 권위와 명성이 가려지면서 되레 책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다. 책상·꽃·무표정한 인물 등 지극히 평범한 소재를 택하지만 정희승의 사진은 마치 아기 곁에서 애정을 담아 24시간 이상 관찰한 엄마같은 시선을 담는다. 이 같은 본질적 접근이 “나도 따라 찍을 수 있다”싶은 그의 사진을 흉내내지 못하는 이유다.
늦은 밤 한강공원에서 찍은 스냅사진같은 김태동의 작품은 진실을 전제로 했으나 실제 사건을 촬영한 것은 아니라 의미가 다르다. ‘그곳에서 일어날 법한’ 장소특정적 사건을 인위적으로 연출한 사진으로 현대인과 공간의 의미를 말한다.
전시를 기획한 김종호 두산갤러리 디렉터는 “사진이 1980년대 이후 세계 현대미술의 중요한 장르가 됐음에도 국내에서는 아직 미학적·미술사적 비평적 담론도 거의 없었고 이론 정립도 약하다”면서 “현대미술로서 사진이 갖는 장르의 전문성, 그 가치와 의미를 논하기 위해 5명의 작가와 1년 이상 정기 워크샵을 진행하며 이룬 전시”라고 소개했다.
김도균 작가의 경우 ‘회화적 조형미가 탁월한 건축 사진’으로 대중적으로 잘 알려졌지만 실제 그 사진의 특징은 “3차원의 대상을 2차원으로 재현하면서 사진이 인간과 근본적으로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며 “‘그림 같은 사진’이라며 회화적 가치를 평가할 게 아니라 고유한 사진의 조형어법을 따질 필요가 있다”는 게 김 디렉터의 설명이다. 국내 사진전으로는 유례없는 형식을 시도한 이번 전시에는 1950년대 이후 세계 사진사의 흐름과 함께 체계적으로 정리한 한국 사진사(史)의 연대표가 함께 걸렸다. 5명의 작가가 어떤 영향을 받았고 현대미술의 지형 속에서 어떤 위치를 갖는지도 그래프로 보여줘 흥미를 더한다. 개막일에는 ‘현대미술로서의 사진, 오늘의 현황과 내일의 전망’을 주제로 미술평론가 신혜영·문혜진 씨 등의 특강이 진행됐다. (02)708-5050
·사진제공=두산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