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암 치료의 실마리를 찾다

애플 공동 창업자 스티브 잡스 Steve Jobs의 목숨을 앗아간 췌장암은 오랫동안 연구진의 애를 태워 온 치명적인 질병이다. 보스턴에 위치한 버그 Berg 사는 인공지능이 질병 치료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 믿고 있다.



새롭게 파란 잔디를 깐 보스턴 펜웨이파크 Fenway Park 구장에 사람들이 눈을 찡그린 채 서 있다. 야구하기 딱 좋은 청명한 여름날이다. 사람들은 약간 수줍은 표정이지만 만면에 미소가 가득하다.

이들은 운이 좋은 사람들이다. 생존율이 매우 낮은 췌장암을 이겨낸 극소수 환자들이니 말이다.


보스턴에 있는 베스 이스라엘 병원(Beth Israel Deaconess Medical Center)의 작은 사무실에는 이 장면을 담은 사진이 걸려있다. 병원 부속 간ㆍ췌장 외과연구소를 총괄하는 제임스 모저 James Moser는 “야구장 위에 서 있는 이 네 사람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이들 한 명, 한 명은 스스로 기적을 만들어낸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버그는 매사추세츠 주 프레이밍햄 Framingham 인근에 위치한 생명공학 신생기업으로, 모저를 비롯한 여러 연구진이 기적의 이유를 밝혀내려 노력하고 있다.

췌장암은 파괴적인 질병이다. 지난해 처음으로 유방암을 앞질러 미국 내 암 사망률 3위를 차지했다. 올해 5만 3,000명 이상이 췌장암 진단을 받았고, 그들 중 약 73%가 1년 이내에 사망할 운명에 처해있다.

2006년 설립된 버그는 데이터분석 소프트웨어와 실험실 기반 치료제 개발 방식을 복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암, 당뇨병, 중앙신경계 이상질환 등 여러 치명적인 질병의 새로운 치료법을 찾고 있다. 사명(社名)은 공동 창업자이자 회장인 칼 버그 Carl Berg의 이름에서 따왔다.

칼 버그는 실리콘밸리에서 부동산 개발과 투자로 성공한 억만장자다. 그는 제약 및 생명공학 산업의 신약 개발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갖고 있다.

버그의 공동창업자이자 CEO인 니벤 내래인 Niven Narain은 “기술과 경제라는 두 개의 폭풍이 한꺼번에 몰려오고 있다. 시간에 급급해 경솔하게 신약을 개발하던 시대는 끝났다. 우리는 이제 치료제 개발을 위해 데이터와 환자 상태, 생물학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런 방식이 의학의 형태를 바꿔 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버그의 전략 핵심은 인공지능의 활용이다. 버그의 자체 소프트웨어는 IBM의 슈퍼컴퓨터 왓슨 Watson과 유사한 면이 많다. 이 소프트웨어는 대량의 생물학 데이터를 처리해 건강한 사람과 환자 사이에 존재하는 (인간은 예측하지 못하는) 관계를 밝혀내고 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좀 더 정확한 가설을 세우고, 더 효과가 뛰어난 신약을 개발한다. ‘건초더미에서 바늘 찾기’라는 속담이 있지만 여기서는 건초더미를 뒤질 필요도 없이 바늘을 발견할 수 있다.




한 연구원이 매사추세츠 주 프레이밍햄에 위치한 버그 본사에서 저온 기억장치로부터 냉동세포를 꺼내고 있다.한 연구원이 매사추세츠 주 프레이밍햄에 위치한 버그 본사에서 저온 기억장치로부터 냉동세포를 꺼내고 있다.


버그는 “이 방식을 통해 처음으로 췌장암의 작동 방식을 보여주는 완벽한 모델을 만들어 냈다”며 “췌장암을 정복할 새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는 엄청난 성과”라고 강조했다. 그는 췌장암이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는 원인을 정확히 짚어낼 수 있다는 주장도 펼쳤다.


내래인은 “세상 어디에도 이런 모델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유전체학을 통해 대사 산물과 지방질, 단백질, 임상 데이터, 환자가 복용했던 약물과 복용 결과 등을 검토한 후 환자의 모든 것을 담은 지도를 완성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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췌장암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신진대사로 밝혀졌다. 이 사실은 버그의 과학자들에게 암세포를 막으려면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 중요한 힌트를 제공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BPM 31510’이라 명명된 버그의 췌장암 전문 치료제다.

이 치료제는 특정 신진대사 경로를 재구축해 췌장암의 빠른 증식을 막는다. 치료제를 투여하면 암세포는 마치 정상적인 건강한 세포처럼 작동하고, 이 때문에 화학요법의 타격에도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버그는 2013년 1단계 임상실험을 처음 진행했고, 일부 췌장암 환자들에게 효과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들 중에는 집중 화학치료를 견뎌낸 환자도 있어 매우 희망적이었다. 1단계 실험은 치료제의 효용보다는 독성이 없다는 점을 확인하는 데 더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었다.

버그는 효용성에 중점을 둔 2단계 임상실험에 돌입하려 하고 있다. 회사는 베스 이스라엘 병원과 메이오 클리닉 Mayo Clinic, 위스콘신 의과대학(Medical College of Wisconsin)을 비롯한 자매기관에서 25명의 환자를 모집할 계획이다. 기간은 약 18개월로 예상하고 있다. 2단계 임상실험의 설계는 피닉스에 위치한 메이오 클리닉의 위장계 종양 의학팀장 라메시 라마나단 Ramesh Ramanathan이 맡았다. 그는 이번 실험의 성공을 점칠 수 있는 두 가지 지표로 일반 기준에 비해 감소한 종양 크기와 환자의 수명 증가를 꼽았다.

“2단계 임상실험은 중대한 지점이다. 현재 췌장암 환자들은 초기 화학치료가 실패할 경우, 부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승인된 표준 치료법을 갖고 있지 않다. 이번 연구를 통해 새 복합 치료법이 효과가 있고, 환자들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 싶다.”

‘BPM 31510’은 2단계 임상실험에 돌입한 버그의 첫 신약이다. 그러나 여전히 초기 개발단계다. 2단계 임상실험이 3단계로 이어지는 경우는 39%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버그가 이뤄낸 결과는 희망적이다. 회사의 주장에 따르면,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을 사용해 암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다시 베스 이스라엘 병원으로 돌아가보자. 모저는 펜웨이 파크에 서 있는 네 사람이 담긴 사진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그는 버그와 진행한 연구의 결과로 환자들의 운명을 바꿀 수 있길 기대하고 있다. 미래에는 펜웨이 파크 일부가 아니라 스탠드를 가득 채울 수 있을 정도로 생존자가 무수히 많아지질 바라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는 췌장암 진단을 받는다는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모저는 “우리가 무언가 발견해 췌장암 환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설령 그것이 아주 극소수 환자에게만 해당된다 하더라도 다른 변화들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한번 해낼 수 있다면, 얼마든지 또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By Laura Lorenzet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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