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즐기며 몰입하는 ‘덕후’의 시대

임채운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영화 스타워즈의 배경을 설명해주는 오프닝 자막에서 그 끝에 나오는 생략부호가 다른 모든 에피소드는 네 개의 점으로 표시되어 있는 반면 에피소드 6에서만 점이 세 개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라면 국물이나 치킨의 튀김 옷 냄새만 맡아도 어떤 브랜드인지를 알아맞힌다면.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덕후라고 부른다.

원래 덕후는 ‘오덕후’의 줄임말이고 이는 일본의 ‘오타쿠(おたく)’를 한글로 옮긴 신조어다. 영어로 표현하면 마니아(mania)와 가깝겠다. 그런데 한국에 처음 이 말이 들어왔을 때는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장난감에 열광하는 사람들에 국한돼 사용됐다. 게다가 사회성이 결여된 은둔형 외톨이로 비하하면서 ‘덕후’라고 쓰고 ‘사회부적응자’라고 읽기까지 했다. 나이에 맞지 않게 쓸모없는 것에 집중하고 생산적이지 않은 행동이라고 생각한 까닭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덕후는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능력자로 대접받고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성공사례로 등장하며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만화방 아들이 웹툰 시장을 이끄는 최고기술경영자(CTO)가 되고 PC통신 시절 자동차동호회 출신이 또 다른 자동차 덕후들과 의기투합해 만든 수제자동차는 1년 치 이상 주문이 밀려 있다. 해커의 세계에 빠져들었다가 보안 솔루션 기업의 전문가로 거듭나기도 하고 채식이라는 식습관을 뛰어넘어 비건(vegan) 요리를 전문으로 개발해 강습과 컨설팅까지 하는 주인공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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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의 성공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제아무리 뛰어난 인재도 즐기는 사람은 이길 수 없다. 아무런 소득 없어 보이는 일에도 지독하게 달려드는 불나방 같은 존재가 아닌가. 처음에는 그저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미치도록 좋아하는 일로 무엇이든 깊게 파고들면 그 안에 길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이들은 매력적인 대상일 수밖에 없다. 어느 한 분야의 스페셜리스트인 ‘준비된 덕후’가 기업의 새로운 인재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문적인 지식과 열정을 쏟아 부어 성공기업의 주춧돌이 돼주기를 기대한다. 또 덕후를 가장 선도적인 ‘입소문 마케터’로 활용하기도 한다. 제품이나 서비스의 히스토리와 장단점을 꿰고 있는 그들은 큰 경제적 대가가 없더라도 그 제품을 사랑하고 분석하고 대중들에게 퍼뜨려주기 때문이다.

성공한 덕후가 점점 늘어가고 대중이 이들에게 열광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들이 인정받을 수 있는 건강한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먹고사는 것이 불가능한 현실만은 아니며 평범한 삶을 드라마틱하게 바꾸고 주변 세상마저 이롭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능력자’의 면모를 가진 그들의 순수한 열정이 지속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자. 더 즐겁게 더 신나게 일을 저지를 수 있도록.

임채운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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