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칸의 몽골군은 25년이라는 최단기간에 10만명에 불과한 소수 정예군으로 태평양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이제껏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정복의 역사를 만든 주인공은 몽골말의 뛰어난 기동력으로 무장한 기마군단이다. 서양말은 키가 커 보기만 좋지 관절이 약해 급회전이나 급제동 면에서 몽골말에 비해 뒤처진다. 지구력도 차이가 커 서양말은 고작 몇 ㎞를 달리면 쉬어야 하지만 몽골말은 하루에 100㎞를 움직일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유럽 기마군단은 기사와 말이 모두 철갑을 둘러 무게가 100㎏이 넘는 중무장 상태였으니 서 있기도 힘들 정도였다. 이에 비해 무장을 거의 하지 않은 몽골 기마군단은 바람처럼 움직이며 마상에서 활과 칼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니 자웅을 겨룰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몽골말은 기원전 6,000~5,000년께부터 중앙아시아에서 가축화되기 시작했다. 몽골인은 그들의 역사 이전부터 몽골말과 함께 초원을 돌아다니며 유목민으로 살아왔다. 말 위에서 태어나 말 위에서 자라고 죽는다는 뜻의 ‘마상생 마배장(馬上生 馬背長)’이라는 표현을 보면 몽골말이 몽골인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알 수 있다.
몽골말은 우리와도 관계가 깊어 제주도에 자생하는 조랑말의 선조가 된다. 고려를 침략한 몽골군은 1276년 제주도에서 마지막까지 항거하던 삼별초를 제압한 뒤 몽골말 160마리를 데려와 방목했다. 조랑말이라는 단어도 상하 진동 없이 달리는 ‘조로모로’ 주법이라는 몽골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제11차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 주최국인 몽골로부터 몽골말 선물을 받았다. 박 대통령은 운송이 어렵다고 보고 현지 위탁관리를 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양국은 이번에 사실상의 자유무역협정(FTA)인 경제동반자협정(EPA)을 추진하기로 했다. 세계를 누빈 몽골말보다 더 많은 나라를 달리고 있는 우리의 자동차가 EPA를 계기로 몽골에서 몽골말만큼 대접받기를 기대해본다. /한기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