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에서는 젊은이들이 연애하고 싶은 상대에게 다가갈 때 “라인(네이버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하니?”라는 말을 곧잘 사용한다. 태국관광경찰청은 태국 왕궁을 방문하는 현지인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공식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창구로 라인 계정을 활용하고 있다. 일본과 대만·동남아시아 등지를 중심으로 빠르게 번져나가며 어느덧 누적 이용자 수 10억명(2016년 3월 기준)을 돌파한 라인의 위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라인의 성공은 조직문화를 근본부터 뒤흔든 네이버의 혁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본부’가 통제하는 중앙집권조직 형태를 분산형·업무 중심의 셀(세포)·프로젝트 조직으로 바꾸고 수평적 조직문화를 안착시켜 시장을 빠르게 읽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양한 운영체제(OS)를 갖춘 저가형 스마트폰이 범람하는 동남아 시장의 특성에 맞춰 웬만한 OS는 모두 지원할 수 있도록 라인의 개방성을 높인 것이 한 사례다. 네이버 관계자는 “네이버의 각 셀은 예산집행부터 채용까지 자유롭게 진행할 수 있다”면서 “높은 자유도를 토대로 국내외 조직들이 철저히 시장·소비자의 관점에서 고민한 것이 네이버가 라인을 비롯한 각종 서비스를 흥행시킬 수 있었던 요인”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조직문화 혁신은 최근 들어 네이버를 포함한 소프트웨어(SW) 업체뿐 아니라 가전·자동차 등 전통적 제조업 기업으로도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각 단위가 상품·서비스 기획부터 개발까지 능동적으로 추진하고 끝맺을 수 있는 ‘세포형 조직’으로의 혁신이 ‘신속하고 유연한 기업’으로 거듭나는 열쇠라는 판단에서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神)으로 추앙받는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그룹 명예회장은 이를 “아메바(단세포 원생동물의 총칭) 경영”으로 불렀다.
미국을 대표하는 에너지·중공업 대기업인 제너럴일렉트릭(GE)은 40년 넘게 자리 잡았던 코네티컷주 페어필드 본사를 올 초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으로 옮기기로 했다. 표면적 이유는 세제 혜택이었지만 보스턴 인근에 있는 하버드·매사추세츠공대(MIT) 같은 명문대가 배양하는 스타트업 인재·문화를 확보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GE 스스로도 ‘린 스타트업’의 저자 에릭 리스의 자문으로 사내 벤처를 적극 육성하고 딱딱한 조직문화를 스타트업과 유사하게 바꾸는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속전속결의 스타트업 문화로 130년 장수기업의 위상을 유지한다는 목표다.
올 들어서는 국내 거대기업들도 조직문화 혁신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스타트업 삼성’을 표방한 삼성전자는 직급 체계를 단순화하고 습관적 잔업을 없애기로 했다. 작게는 여름철 사내 반바지 입기 운동까지 시행하며 관료제를 뿌리 뽑고 업무 중심의 팀제 문화를 정착시킬 계획이다. LG전자도 팀장·회의 없는 날, 자율출퇴근제처럼 조직을 유연하게 바꾸는 작업에 여념이 없다. 이달 초에는 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한 모바일커뮤니케이션(MC)사업본부에도 대대적인 수술을 단행해 중간보고 단계를 줄인 한결 단순한 조직으로 바꿨다.
통상 전자 업계보다 변화 속도가 느린 자동차 업계에서는 깜짝 조직개편으로 본사에 집중된 권한을 축소한 임영득 현대모비스 사장을 주목한다. 임 사장은 이달 초 본사에 배치했던 품질조직을 일선 생산공장으로 전진 배치하는 ‘부분적 아메바’ 혁신을 실시했다. 품질경영이라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철학에 전념하면서도 신속한 현장 대처가 가능한 조직으로 현대모비스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다. 이밖에 도요타·포르쉐·르노삼성 등에 잇따라 도입된 혼류생산(한 생산라인에서 다품종차량 조립) 역시 컨베이어벨트로 상징되는 소품종 대량생산에서 탈피하고자 자동차 업계가 추진하는 아메바 혁신의 일환이다.
이처럼 국내외 기업들이 앞다퉈 추진하는 아메바 경영은 변화속도·폭을 예측하기 어려운 외부 환경에 대처하기 위한 기업의 진화 형태다. 중앙에서 통제하는 공룡형 조직은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서동혁 산업연구원 신성장산업연구실장은 “3차원(3D) 프린터 기술, 정보통신기술(ICT)이 생산현장에 접목되면서 생산의 효율성, 가격경쟁은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면서 “세상에 없던 신제품·신기술을 기획하고 개발해 전 세계 시장을 선제 공략하기 위해서는 아메바형 조직으로의 전환이 필수”라고 설명했다.
다만 국내 산업계에서는 조직 형태를 바꾸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다는 지적도 많다. 기업들이 수십년간 굳어진 상명하복 문화를 완전히 깨뜨리고 구성원 간의 수평적 문화를 조직에 뿌리내리지 못하면 혁신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상린 한양대 교수는 “국내 기업들은 외형은 글로벌화했지만 조직의 속살은 변화하지 못했다”면서 “외국 선진기업과의 경쟁에서 생존하는 것을 넘어 글로벌 시장과 원만히 상호작용하며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조직문화의 겉과 속을 모두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